'임기응변(臨機應變)'이라는 말이 있다. 언뜻 생각나는 유사어가 '미봉책(彌縫策)' 혹은 '잔머리' '임시방편' 등이다. 그러나 임기응변을 사전에서 찾아 보면 '그때그때 처한 뜻밖의 일을 재빨리 그 자리에서 알맞게 대처하는 일'이다. 말인 즉, 단편적이거나 우연의 결과를 담고 있지 않다는 것인데 이 때문에 임기응변과 제갈공명이 동의어처럼 생각되는 듯 하다.
우리는 무엇이든 남보다 빠르게 성취하는 재능을 타고난 사람을 신동이라 부른다. 그런데 신동이 없다는 게 정설인 분야가 있다. 바로 서예다. 서예는 기본 글씨체를 체득하고, 이제까지 등장한 모든 명필의 서체를 익히고 나야 비로소 자신만의 필체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은 기본 서체를 익히는 것만으로 평생을 보내고, 뛰어난 사람도 역사 속의 명필의 서체를 모두 배우기 어렵다.
태평직물은 '코치' '프라다' 'MCM'등 명품브랜드 가방의 원단을 직조해 납품하는 기업으로 3대째 명맥을 지키고 있다. 불황과 호황 시의 매출편차가 30% 미만이고, 다문화 가정의 합리적 고용을 유지 중이며, 이익을 위해 디자인부터 납품에 이르기까지 설정된 생산 및 검수 공정을 단 한 순간도 어긴 적이 없다. 뿐만 아니라, 제품의 도용을 방지하기 위한 역공정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삼일방직은 면방업체라면 의례 있어야 할 솜 먼지가 거의 없는 생산시스템을 갖췄다. 우주항공복을 비롯한 소방복, 군복 등에 사용되는 특수복 원사와 직물은 물론 니트 제작을 위한 제품까지 자사 만의 경쟁력을 탄탄하게 확보해 두고 있다. 굳이 제품의 우수성을 살펴보지 않아도 공장 내에서 마주치는 직원들의 표정만 봐도 회사의 우수성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 두 곳은 시장에 의존하지 않고, 시장을 이끌어 간다는 공통점을 가졌다. 또 각자의 제품 분야에서 시장변화에 대응하지 못할 게 없으며, 타사를 흉내 내는 것이 아닌 자사만의 고유한 제품을 지녔다는 것도 같다. '섬유산업=사양산업'이라는 말을 이십 년 넘게 무색하게 만들었고, 여전히 섬유산업을 블루칩으로 삼고 있다. 두 회사야 말로 제갈공명이 아닐까 싶다. 임기응변 제대로 배우자.
/인터패션플래닝(www.ifp.co.kr)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