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영동 1985' 정지영 감독
"배우 물고문 37초 참아내더라
민주주의 훼손에 침묵하지 말길"
영화 '부러진 화살'로 사법부에 날카로운 활을 쐈던 정지영(66) 감독이 야만의 역사에 돌직구를 날렸다. 고 김근태 민주당 상임고문의 자전 수기를 바탕으로 1985년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벌어진 22일간의 고문 기록을 담은 영화 '남영동1985'(22일 개봉)를 통해 훼손된 민주주의에 무감각한 현대인에게 쓰라린 자극을 안긴다.
고문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는.
고문 경찰관 이근안을 소재로 한 이야기를 머리 속에 담고 있었는데, 이걸 천운영 작가가 '생강'이라는 소설로 썼다. 그걸 다시 내가 영화화 하려 했는데 이야기 방향이 좀 달랐다. 그러던 중 김근태 의원이 돌아가셨고, 수기 '남영동'을 읽었다. 그 순간 영화화를 결정했다.
촬영이 고통의 연속이었을텐데 언제가 가장 고비였나.
작업 환경이 아닌 마음이 힘든 거라 어디가 어떻게 힘들었다고 말할 수 없다. 내가 고문을 하고 있었고, 그 걸 내가 동시에 봐야 하는 것도 고문이었다.
고문 가해자들의 인간적인 면을 중간중간 넣은 이유는.
처음부터 관객을 고문실에 가둬 놓고 시작하는데 중간에 극장을 뛰쳐나가면 안 되지 않나. 관객이 참을 수 있는 수위를 계산해서 작은 여유를 줄 필요가 있었다.
사실적인 표현을 위해 어디까지 실제 고문이 이뤄졌나.
도저히 못 참을 때까지 찍자고 약속했다. 배우가 견뎌내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고, 고춧가루 물을 얼굴에 뿌리는 장면에서는 37초까지 참아내더라. 모든 배우가 촬영 내내 세트 옆 조그만 공간에 모여 끊임 없이 대화하고 격려하며 힘든 과정을 극복해 갔다.
주인공 박원상의 고통이 무척 컸을 것 같다.
박원상이 출연하지 않았다면 많이 해맸을 것이다. 그를 택한 이유는 나를 믿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는 특히 감독과 배우의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 힘들 거라 각오는 했지만 예상 보다 훨씬 심했고, 마음이 무척 아팠다.
이 영화가 2012년에 주는 의미는 뭔가.
그들이 그렇게 고통스럽게 몸과 마음을 희생하며 지켜낸 민주주의가 지난 몇 년간 훼손당하는 것을 보면서, 그리고 국민들이 이에 무반응한 것을 보면서 안타까웠다. 국민들이 영화를 보며 아파하고, 소중하게 얻어낸 민주주의가 훼손될 때 적어도 침묵하지는 말자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대통령 선거 야권 후보 단일화를 촉구했는데, 단일화 논의가 시작됐다. 이를 어떻게 바라보나.
상당히 중요한 시점이다. 그렇다고 그들(문재인·안철수 후보)이 최선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다가 나중에는 노무현 대통령을 비판한 사람이다. 내가 누구를 지지한다고 해서 늘 함께하는 것만이 옳은 것은 아니다. 자신이 지지하는 사람이라도 정당한 비판을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 아닌가.
/유순호기자 suno@metroseoul.co.kr· 사진/서보형(라운드테이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