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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제일반

잡설과 직설

도법스님은 언제나 '화쟁(和爭)'을 말씀하신다.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리자는 것이다. 그러자 목사인 나와 김인국 신부는 "그래도 싸울 것은 싸웁시다"라고 반격한다. 이런 식으로 티격태격한 다섯 번의 만남에서 나온 대화가 '잡설'이라는 책으로 나왔다. 스님, 목사, 신부 셋이 모여 나눈 이야기는 그러나 잡설이 아니고 '직설'이라는 평을 들었다.

살아온 삶의 내력이 서로 다른 이들이 어우러진 시간들은 늘 유쾌했고, 종교적 차이에 따른 다툼은 낄 데가 없었으며 결국 함께 도달하게 되는 자리는 아픔의 현장이었다. 생명 평화 운동을 벌여온 도법 스님, 삼성이라는 거대한 자본과 대결해온 김인국 신부, 그리고 이런 저런 정치사회적 발언은 해온 나, 이렇게 셋이 뭉쳐보니 오랜 세월을 같이 보낸 벗들이 마음을 나눈 기분이었다.

"불가에는 첫 번째 화살은 누구나 맞게 되지만, 두 번째 화살을 피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있습니다." 부처님의 몸에도 첫 번째 화살이 박혔지만, 집착과 욕정같은 두 번째 화살은 날아오는 도중에 분질러지고 만 셈이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이야 바로 이 두 번째 화살을 피하기는커녕 도리어 맞기를 자청하지 않는가? 그렇게 하다가 마음의 시련을 겪고 비틀거리는 것이 중생의 삶이 아닌가 하는 것이 스님의 진단이다.

그러니 피해자도 그렇지만, 가해자에게도 그 마음에 열고 들어갈 '문'이 있으니 문 없다고 벽을 때려 부수듯이 상대를 치고 나가진 말자는 것이다. 그런데 나와 김인국 신부의 생각은 좀 달랐다. 그렇게 될 수 있으면 참 좋겠는데, 피해자는 해결의 자리에 나오지만 가해자는 아예 나오지 않으니 문을 열고 자시고 할 수 없지 않느냐 했다. 상대를 때려 부수겠다는 것은 아니고, 누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사태의 전후사정을 먼저 제대로 가리자는 것이었다. 이런 싸움이 없으면, 가해자들은 움쩍도 않는다.

용산참사부터 쌍용차등에 이르기까지 해결을 논하는 자리조차 제대로 마련되지 못한 현실이었다. 진정 '화쟁'했으면 좋겠다. 누가 싸우기를 즐겨 하겠는가? 그러자면 강한 자들이 약한 이들을 억울하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가장 먼저 돌보고 지켜야 할 이들을 그와는 거꾸로 가장 먼저 버리고 짓밟고 있는 것이 우리네 사는 모습이다. 잡설이 직설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강자들이여, 없는 사람들 제발 아프게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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