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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호의 베이스볼 카페 : 애증의 찬호, 벌써 보고싶다

▲ 박찬호



박찬호가 옷을 벗었다. 팬들에게 박찬호의 은퇴는 아쉬움이 크다. 그렇지만 야구기자들에게 박찬호는 애증의 인물이다.

90년대 중반 이후 메이저리거 박찬호가 뜨면서 박찬호 기사는 잘 팔렸다. 각 스포츠 신문사들은 특파원을 미국에 상주시켜 경쟁적으로 박찬호 기사를 게재했다. 아마도 그는 스포츠신문의 1면을 가장 오랫동안 독점했던 인물일 것이다.

기자들에게 낙종은 죽음과도 같았던 시절. 각 신문사는 박찬호 때문에 매일 희비가 엇갈렸다. 정보와 타이밍(속보)에 따라 소위 특종과 낙종이 뒤바뀐다. 일거수 일투족 단신 하나도 놓칠 수 없었던 특파원이나 야구기자들에게는 고역이었다.

언제 어디든 기자들이 몰려들었으니 박찬호도 힘들었다. 한마디를 하더라도 기사의 방향이 다르게 나왔다. 갈수록 기자들과의 스킨십이 줄어들었고 박찬호는 까다로운 취재원이 되어갔다. 사진기자들이 그라운드에서 사진을 촬영하면 고개를 돌리거나 얼굴을 가려 불만을 낳기도 했다.

2007년 11월 오키나와의 에피소드. 아카마 구장에서 베이징올림픽 대표팀 전지훈련에 박찬호도 태극마크를 달고 참가했다. 첫 훈련을 마치고 인터뷰가 시작될 즈음 갑자기 박찬호와 한 기자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다. 그는 기자와 대거리를 벌일 정도로 거물이었다.

기자는 그때 박찬호가 속정 있는 남자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뻘쭘하게' 기다린 다른 기자들에게 미안했던지 장장 1시간 넘게 시간을 내서 인터뷰가 아닌 간담회를 마련했다. 기자들은 궁금했던 사항을 모두 질문했고 박찬호도 웃으면서 친절하게 응답했다.

물론 다음에는 원래의 취재원 박찬호로(?) 되돌아갔지만 말이다. 엊그제 은퇴회견장에 운집한 야구기자들은 선수 박찬호와 마지막 인터뷰를 했다. 박찬호가 유니폼을 벗자 기자들의 짐도 함께 내렸다. 아~ 그런데, 그 까다로운 박찬호를 다시 마운드에서 보고 싶은 마음은 무엇인지.

/이선호 OSEN 야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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