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응원에 등장한 '붉은 악마'는 이른바 '레드 콤플렉스'를 사라지게 하는데 알게 모르게 기여를 했다. 빨간 색은 좌파진영의 전통적인 깃발이었는데, 그와는 완전히 다른 정치적 입장에 있는 정당이 이 색을 자신의 것으로 삼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서구 사회주의 정당들이 한국 정치를 보면 아마 헷갈릴 것이다.
떡갈나무 둘레에 노란 리본을 매달아 고향에 돌아오는 남편을 환영하는 노랫말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d oak tree'는 1970년대 인기 팝송이었다. 아픈 세월을 지나 다시 사랑을 확인하는 노란 색을 보고 주인공은 감격해한다. 노란 색의 물결은 우리네 예전 살림살이에서는 논밭의 풍요한 추수를 상징했다.
흑색선전은 'Black propaganda'의 번역이다. 상대를 음해할 목적으로 만들어낸 모략으로 그 출처가 마치 상대진영에서 나온 것처럼 위장하는 방식이다. 회색선전은 출처 자체가 명확하지 않은 근거 없는 비방이다. 백색선전도 있다. 이건 출처는 명백한데 내용은 묘하게 왜곡시키거나 일부만 강조해서 상대를 곤경에 빠뜨리는 수법이다.
유교통치가 있던 시절, 색은 권력을 의미했다. 붉은 색과 노란 황금색은 모두 왕 또는 천자의 색으로 최고 권력자에게 독점되었다. 조선조 평민들의 옷은 죄다 하얀 색이었던 반면에, 관복은 색으로 그 신분이 구별되었다. 옷에 색을 들이는 과정에서 경제적인 이유도 가세했겠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색에 대한 유교철학의 인식이었다.
중국 고대 사서에 등장하는 황제는 우리가 알고 있는 봉황이라는 글자를 쓰는 황제(皇帝)가 아니라, 노란 색 '황'을 쓰는 황제(黃帝)다. 중국 최초의 통일 제국을 이룬 제왕으로서 흙(土)의 색을 상징으로 삼는, 농경시대의 첫 시작을 연 전설적 존재로 기억되고 있다. 한편, 주역에서는 적색(赤色)과 청색(靑色)이 음양의 기본 단위로 태극(太極)을 이루고 있으니 색깔마다 담긴 다채로운 의미를 일일이 거론할 수 없을 지경이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고 했던가? 이때의 색은 눈에 보이는 현실이고, 공은 허무하다는 뜻이니 보이는 것이 곧 모든 것이 아니라는 일깨움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내용이다. 색과 권력의 틀이 작동하는 이른바 '정치적 색계(色計)'를 꿰뚫어 보는 힘이 절실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