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유승호(19)의 이름 앞에 늘 붙어다녔던 '국민 남동생'이라는 수식어를 이제 떼내야 할 때가 왔다. 17일 양주문화동산에서 만난 그는 "더 이상 아역이 아닌 성인 연기자라는 것이 절실하게 다가온다. 몸에 익숙한 것을 버리고 시선 하나까지 바꿀 것 "이라며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 어른으로 가는 길은 험난해
데뷔 12년차의 베테랑 배우지만, 취재진 앞에서 쑥스러운 미소만 지을 뿐 좀처럼 말이 없던 그가 확 바뀌었다. 최근 MBC 수목극 '보고싶다'로 시청률 1위를 차지한 것에 대해 자기자랑을 해달라고 했더니 "CG남(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것처럼 완벽한 외모의 남자)"이라고 즉답해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드는가 하면 "다리 저는 연기를 할 때 헷갈려서 가끔 반대쪽을 절기도 한다. 딱 한번 실수한 장면이 방영됐는데 아무도 모를 것"이라며 능청을 떨기도 했다. 훌쩍 커버린 그에게서 전에 없던 여유가 느껴지는 듯 했다.
2000년 한국 나이 여덟 살에 드라마 '가시고기'로 처음 연예계에 데뷔한 그는 2년 뒤 개봉한 영화 '집으로'가 40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흥행배우 반열에 올랐다. 이후 '불멸의 이순신'의 어린 이순신, '태왕사신기'의 어린 담덕 역을 거치며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모았다.
그러나 그에게도 성인 연기자로 가는 문턱은 높았다. 영화 11편, 드라마 16편에 출연하면서 작품을 통해 성장과정이 온전히 시청자와 관객들에게 노출된 탓이다.
지난해 첫 성인 캐릭터 도전작이었던 '욕망의 불꽃'에서는 악처 인기(서우)를 헌신적으로 사랑하는 남자 민재를 맡아 듬직함보다 보호본능을 자극했고, 이듬해 도전한 '프로포즈 대작전'의 순정남 강백호와 차기작 '아랑사또전'의 옥황상제 역시 별다른 임팩트를 주지 못했다.
드라마 '보고 싶다'의 유승호 윤은혜 박유천(왼쪽부터)
# 윤은혜 "잘 자라줘 고마워, 승호야"
하지만 올 겨울 만난 '보고싶다'속 형준은 옴므파탈의 필수조건인 '목적'과 '라이벌' 두 가지를 모두 갖고 있다. 수연(윤은혜)를 쟁취하고 태준(한진희)에게 복수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은 남자다움을 어필한다. 집안·학벌·외모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사랑의 라이벌 정우(박유천) 역시 긴장감과 승부근성을 자극하기 부족함이 없다.
윤은혜는 "승호가 나이에 비해 어른스럽고 남자다워서 (멜로 연기도) 죄 짓는 마음으로 한 적이 없는데, 우리가 6년 전 시상식에서 만났던 사진을 보니 세월이 무섭긴 무서운 것 같다"며 잘 자라준 그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스스로도 "가장 제대로 된 성인 역할이자, 이전에 보여주지 못한 모습이 담긴 캐릭터"라고 자평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미스테리 인물을 연기하는데 어려움도 따른다.
# 이젠 내 손으로 대통령 뽑아요
성인 유승호의 또 다른 변화는 투표권이 생겼다는 것이다. 19일 치러질 18대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서 생애 첫 투표권을 행사하게 된 그는 "꼭 투표하겠다"며 결의를 다졌다.
"처음해서 어떻게 하는지는 잘 모르는데, 정말 설레요. 운전을 할 수도 있고, 술을 마실 수도 있고. 예전에는 못하던 것들이 하나하나 되니까 무척 신기하고 진짜 성인이 됐구나 느껴요."
성인이 되면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일이 무엇인지 묻자 "늦게까지 노는 것"이라는 소박하고 모범적인 대답이 나왔다. 반면 단 한번도 해보지 못한 연애에는 지금까지도 욕심이 없다. 촬영 현장에서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다 보면 외로움을 느낄 틈도 없기 때문이다.
이에 박유천은 "승호가 외로워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귤을 그렇게 먹는다"고 넌지시 귀띔했다. 마음이 허한 스무 살 꽃청년의 독특한 외로움 달래기 비법이다.
/양주=권보람기자 kwon@metroseoul.co.kr·디자인/양성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