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수입차가 차지하는 비중이 10%를 넘어섰다. 내년에도 수입차 업계는 연비 좋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소형차를 대거 출시할 예정인 만큼 점유율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하지만 수입차 시장이 커지면서 문제점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게 가계부채 증가다. 국산차에 비해 수입차 가격이 비싸다 보니 소비자가 무리하게 빚을 내 차를 사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담스러운 빚'을 감안하면서까지 수입차를 사게 하는 장치는 무엇일까. '원금유예할부'라는 파이낸스 프로그램 덕(?)이다. 원금유예할부 프로그램응 차값의 일부만 선납하고 유예원금의 이자만 내면서 최종 잔금은 36~ 60개월 뒤로 미루는 결제 방식이다.
수입차 업계는 차값 부담이 큰 수입차를 일단 목돈 없이 굴릴 수 있다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을 담보로 일단 차부터 고객에게 넘기고 보는 방식의 영업 활동을 펼치고 있는 셈이다.
당장 목돈 없이 수입차를 구입할 수 있게 되면서 젊은층의 구매가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해 10월 20대 18%, 30대 14.6%였던 점유율이 올해 10월 20대 21.1%, 30대 15.6%로 증가했으며, 2010년 1~9월까지 연령별 수입차 구입 비율을 보면 30대의 비중이 36.5%로 가장 높다. 즉 상대적으로 경제적 기반이 약한 30대 이하 젊은층이 '큰 손'인 셈이다.
기본적으로 원금유예할부 프로그램은 정상할부 금리에 비해 고금리다. 국내 자동차업계 정상할부 금리는 7~8%대 수준인데 비해 유예할부의 금리는 10%가 넘는 수준이다.
유예된 원금은 만기시점인 36~ 60개월 후 목돈으로 갚아야 할 돈이다. 만기에 유예된 원금을 목돈으로 갚아야 할 부담이 생기고, 목돈이 없으면 차를 팔아 원금을 갚거나 재 금융신청을 해야 한다.
하지만 차를 팔아 유예 원금을 갚으려 해도 수입차의 경우 보증수리가 만료되는 3년 이후 잔존 가치가 급격히 하락해 최대 50%까지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유예 원금을 갚기 부족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수입차 판매가 급증한 2010년 이후 만기가 돌아오는 향후 1~2년 후에는 가계부채로 인한 사회적 문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무분별한 카드 발급으로 발생했던 2000년대 초반 신용카드 대란과 같은 병폐가 재현될 수 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수입차 업체들이 유예할부 프로그램을 선진금융기법이라고 광고하며 마케팅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사실은 차를 팔아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이자놀이를 하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수입차 업체들이 자회사로 두고 있는 할부금융사의 영업실적을 보면 이런 지적이 나올 만도 하다.
BMW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토요타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수입차 할부금융사들이 지난해 올린 매출은 9782억원에 달한다. 국내 57개 캐피털사 전체 수익(10조원)의 약 10%다.
BMW파이낸셜코리아는 2011년 매출 4952억원에 영업이익은 697억원을 기록했고 벤츠파이낸셜코리아는 2003년 35억원에 불과하던 매출이 2011년 3349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특히 이들의 영업이익은 매출의 15%로 국내 캐피털사의 3배에 이른다. 부채를 안고 수입차를 산 고객들이 수입차 할부금융사의 최대 수익원인 셈이다.
이에 대해 수입차 브랜드 관계자는 "기본 원가에 수입 관련 물류비 등 단가가 높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소비자에게 부담을 덜어주려다보니 원금유예 방식의 결제를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원금유예할부 탓에 발생한 부채는 얼마나 될까.
수입차를 산 고객 중 몇 %가 이 방식을 선택했는 지는 구체적으로 알기 어렵다. 해당 업체들이 이러한 수치를 공개하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몇 수입차 딜러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최소 5대중 1대가 원금유예할부 방식으로 팔리고 있다.
원금유예할부 프로그램 이용률을 20%(유예율 70%)로 가정해 연도별 유예원금을 추산하면 연도별 총액은 2010년 3252억원, 2011년 4077억원, 올해 1~9월 3860억원으로 나타났다. 올해 4분기 수치가 반영될 경우 5000억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원금유예할부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고객이 36개월 유예할부를 선택했다고 가정하면 이로 인해 발생하는 가계부채 총 규모는 1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또 유예할부 기간을 36개월 초과 60개월 미만 사이에서 선택했다면 유예 원금의 기간이 늘어나므로 총 가계부채 규모는 더 증가한다.
조세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수입차 선택 모형에 관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국산차 보유가구의 전세 거주자는 20.3% 수준인데 비해 수입차 보유 가구 가운데 전세 거주자는 26.6%로 나타났다.
수입차 업계의 무분별한 원금유예할부 프로그램 마케팅 활동으로 경제적 기반이 약한 소비자의 과시적 소비가 확산될 경우 향후 커다란 사회문제로 떠오를 가능성이 큰 게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