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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봉의 도시산책] 일제의 의도 짙게 밴 '제야의 종'

올해에도 '제야의 종'은 어김 없이 울릴 것이다. 아득한 선조들로부터 면면히 이어져온 전통이라고 여기는 행사이니만큼 시민들의 관심도 뜨겁다. 제야의 종 타종식은 그러나 애석하게도 일제의 나팔수 구실을 하던 경성방송국에 의해 시작된 이벤트다.

1928년 새해를 앞두고 서울 정동의 덕수초등학교 자리에 있던 경성방송국 직원들은 청취자들에게 신선한 소리를 들려주자는 기획을 한다. 그 신선한 소리는 바로 꾀꼬리 울음 소리였다. 기획자들의 심산으로는 꾀꼬리 3마리를 담요로 정중히 싸고 있다가 갑자기 치우면, 꾀꼬리들이 아침이 온 줄 알고 울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부터 올해 첫 꾀꼬리 울음소리를 들려 드리겠습니다"라는 아나운서 멘트와 동시에 담요를 제쳤지만 꾀꼬리들은 묵묵부답,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휘파람도 불어보고 바이올린으로 홀려 보아도 끝내 예정 시각을 넘기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아나운서는 사과방송을 낼 수밖에 없었다.

포기할 사람들이 아니었다. 이듬해인 1929년 1월 1일에 다시 시도한 것이다. 이번에는 사람 마음대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꾀꼬리가 아니라 서울 남산 기슭에 있던 일본 사찰 '본원사'에서 범종을 빌려다 쳤다. '제야의 종'이 처음으로 전파를 타는 순간이었다.

문제는 그것이 순수하지 않게 활용됐다는 점이다. 새해 벽두만 되면 대한해협을 사이에 두고 한일 간에 종소리 '이원 생중계'가 이어졌다. 일제가 주창하던 '내선일체'나 '동조동근'론을 퍼뜨리는 도구로 쓰기 위해서였다. 심지어 태평양전쟁이 격화되면서부터는 일제의 승전보를 알리는 신호탄이자 참전을 독려하는 도구로까지 활용됐다. 그래서일까.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는 제야의 종을 가리켜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아시아가 흥하는 소리, 즉 '흥아(興亞)의 소리'라고 적고 있다.

앞으로 사흘 뒤면 보신각 주변은 여느 세밑처럼 제야의 종 타종식을 즐기러 나온 인파로 북적일 것이다. 제국주의 망령에 빠져있던 일제의 '의도'가 투영된 행사였다는 점은 그리 대수롭지 않게들 여기면서 말이다. 정작 복원되어야 할 '철근콘크리트' 보신각만 그대로일 뿐, 역사적 사실에 대한 무지와 망각 속에 '집단적 기억'은 그렇게 조작되고 있다.

/권기봉 '다시, 서울을 걷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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