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였다. 동네에서 조성민과 자녀들을 우연히 목격한 적이 있다.
환한 얼굴의 조성민은 스쿨버스에서 내리는 두 남매를 두 팔 벌려 꼭 안아주고 있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주위 사람들은 수군대는 모습이었다.
기자라면 당연히 조성민을 붙잡고 한 마디 말이라도 물어봐야 했었다. 그러나 솔직히 하기 싫었다. 오랜만에 그리고 어렵게 맞이한 것처럼 보이는 그들만의 단란한시간을 깨고 싶지 않아서였다.
생전의 그는 세간의 무수한 억측과 소문에도 저간의 속사정을 속시원하게 밝히지 않았다. 최진실과 갈라설 때도, 친권 논란이 불거졌을 때도 꼭 필요한 말외에는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신일고와 고려대부터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까지 알고 지내던 몇몇 스포츠 신문의 고참 야구 담당 기자들에겐 훗날 시간이 흐르고 나서 가끔씩 속내를 털어놨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자리에서 "이제 와서 할 소리는 아니지만, 그때는 애들 엄마의 편만 들어주는 연예부 기자들이 정말 미웠다"며 푸념했다고 한다.
연예와 야구 취재를 모두 경험해 본 처지에서 지난 일요일 새벽 조성민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을 접하고 나니 괜히 반성문을 쓰고 싶어지는 마음이다. 파경의 원인을 누가 제공했는지를 떠나 조성민의 입장을 가감없이 전한 적이 있었나 가슴에 손을 얹고 자문하게 된다.
남은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려야 할 필요가 있었던 당사자에게 "왜 그랬냐"고 먼저 따져물어야 겠지만, "더 이상 한국에서 살 길이 없다"는 내용의 마지막 메시지가 말해주듯 대중의 따가운 시선이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 가지 않았나 싶다.
삶이란 마운드에서 허무하게 강판을 자청할 수 밖에 없었던 고인의 명복을 빈다.
/조성준기자 when@metr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