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물질이 변형돼 다시 원래의 상태로 환원할 수 없는 현상.'
물리학의 주요 용어 가운데 하나인 '엔트로피'에 대한 설명이다. 쉽게 말하면 쓰레기, 배설물 같이 에너지를 쓰고 나면 남는 부산물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 하다.
IT와 인문학을 논하는 자리에서 새삼스레 물리학 용어를 들이댄 것은 이들 사이에 닮은 점이 많기 때문이다.
노자 '도덕경'에는 '上善若水(상선약수)'라는 구절이 나온다. 풀이하면 '최고의 선은 물처럼 되는 것'이다.
'물은 온갖 것을 이롭게 하면서도 그것들과 다투는 일이 없고 모두가 싫어하는(낮은) 곳에 있다. 그렇기에 물은 도에 가깝다'라는 내용이 이어서 나온다.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한다'는 법칙이 열역학 제 2법칙이다. 열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동한다는 것이다. 엔트로피 측면에서 보면 열이 낮은 곳으로 이동해야 에너지를 소모할 수 있고 그래야 엔트로피가 증가한다. 2500년 전 살았던 노자가 현대 물리학의 기본 중 하나를 터득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처럼 물과 열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움직인다. 이를 조금 더 확장한다면 비가 하늘에서 내리는 것, 담배불이 산불로 커지는 것, 원자력 발전을 하고 남은 핵 폐기물의 위험성 등이 쉽게 이해된다.
주요 IT 기업이 쿼드코어 칩, 풀HD 디스플레이 등을 장착한 새로운 스마트폰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칠판 크기만 한 디지털 TV를 앞다퉈 출시하고, 통신 속도가 빨라진 컴퓨터를 잇따라 선보이는 등 일련의 이벤트가 결국 엔트로피를 높이는 일이다.
문제는 엔트로피가 높아지는 시간이 너무 짧아졌다는 것이다. 애플 아이폰만 해도 1년 주기로 새 시리즈가 나왔는데 아이폰5S가 3월에 나온다고 하니 불과 9개월 만에 새 세대의 제품이 등장하는 셈이다.
장마철 계곡 물이 갑자기 불어나면 야영객은 고립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물귀신이 될 수 있다. 장마라는 특수한 시기에 비가 평소보다 많이 왔기 때문이다.
첨단 IT 경쟁 시대를 맞아 새 제품이 자고 나면 쏟아지는 상황이 장마철 집중되는 비와 뭐가 다를까. 불어난 물에 물귀신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쏟아지는 스마트폰과 태블릿PC에 스마트 귀신이 될 수도 있다.
지하철만 타면 내릴 때까지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는 당신, 카페에서도 태블릿PC만 만지며 맞은 편에 있는 애인을 유령으로 만드는 당신, 주말에 가족은 신경쓰지도 않은 채 게임에 열중하는 당신은 이미 스마트 귀신이나 다름없다.
사족 하나, '도덕경'을 읽으면 우리 몸에 씌인 귀신을 내쫓을 수 있지 않을까. /경제산업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