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대 가장 이모씨는 지난 주말 영화 '레 미제라블' 혼자 보기에 도전했다. 오랜만에 가족과 나들이를 하려 했지만 늘 회사일이 먼저였던 이씨에게 아내와 자식은 시큰둥했다. 결국 이씨는 혼자 영화관으로 향했다. 예상과는 달리 자신과 같은 '나홀로 관객'이 많은 것을 보고 용기를 얻은 이씨는 장발장의 굴곡진 이야기를 감상하며 오랜만에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펑펑 울며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 30대 회사원 최모씨는 점심 때가 되면 직장 동료들의 눈을 피해 슬그머니 혼자 식당으로 향한다. 점심 때만이라도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며 마음 편히 밥을 먹기 위해서다. 메뉴를 고를 때 주변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고 식사를 하면서 동료들과 신변잡기식 대화를 억지로 이어갈 필요도 없다. '나홀로 식사족'을 위한 깔끔하고 맛 좋은 식당이 주변에 적지 않아 최씨의 점심시간은 늘 홀가분하고 즐겁다.
클래식·오페라·뮤지컬 등 고가티켓 1인1매 구입 24%
"간섭 받지않고 나만을 위해 즐긴다" 새 트렌드 반영
'나 혼자 밥을 먹고, 나 혼자 영활 보고…' 인기 아이돌 그룹 씨스타의 히트곡 '나 혼자'에 나오는 '혼자 식사하고 영화 감상하는 일'이 노래가사가 아닌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다.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는 그간의 보고서를 책으로 엮은 신간 '트렌드 코리아 2013'을 통해 올해의 키워드로 '나홀로 라운징(Alone with lounging)'을 선정했다. 나홀로 라운징은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홀로 자신이 만족하는 삶을 추구하는 모습을 뜻한다. 나홀로 라운징은 문화 현상에서 두드러진다.
최근 인터파크의 2005~2012년 티켓 예매 분석 결과에 따르면 혼자서 영화나 공연을 보는 1인 1매 티켓 구매 비율은 2005년 11.6%에서 지난해 23.9%로 12.3%포인트 상승했다. 공연 예매자 4명 중 1명이 '나홀로 관객'인 셈이다.
장르별로 보면 지난해 1인 1매 예매자 비율이 가장 높은 부문은 클래식·오페라(33%)였다. 라이브 콘서트의 경우 7년 사이 1인 1티켓 예매율이 14%에서 30%로 증가했고, 뮤지컬은 같은 기간 8%에서 23%로 고속 성장했다. 여성 나홀로 관객이 15%에서 29%로 늘었고, 남성 나홀로 관객도 7%에서 14%로 동반 상승했다.
나홀로 현상은 식사 풍경에서도 심심찮게 찾을 수 있다.
지하철 1호선 노량진역 4번 출구를 나와 육교를 하나 건너면 '컵밥 포장마차'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도로변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3.3㎡ 남짓한 포장마차마다 무거운 책가방을 맨 학생들이 서서 밥을 먹는다. 2000원대의 저렴한 가격으로 김치볶음밥, 스팸볶음밥 등의 다양한 메뉴를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다.
역 근처의 패스트푸드점은 최근 들어 나홀로 식사족들이 편히 찾을 수 있도록 바(bar)형 테이블을 창가에 전면 배치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 전미영 연구교수는 "예전에는 돈을 아끼기 위해 혼자 밥을 먹고 공연을 관람하는 일이 많았는데 요즘은 '나를 위한 대접' 차원으로 고급스럽게 진화했다"며 "나홀로 관객 사이에서 오페라나 뮤지컬 같은 고가 티켓이 잘 팔리는 까닭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트렌드 코리아 2013' 공동저자인 성신여대 이향은 겸임교수는 "우리나라는 더치 페이 문화가 활성화돼 있지 않은 데다 최근 경기침체까지 겹쳐 혼자 밥 먹는 것이 합리적인 결정일 수 있다"면서 "식사시간만이라도 '착한 사람 컴플렉스'를 벗어나 남의 비위를 맞추지 않고 자기 뜻대로 먹고 즐기려는 현대인의 특성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장윤희기자 unique@metr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