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훈의 IT도 인문학이다(3) - 고전과 전자책의 어색한, 하지만 획기적 만남
흔히 말하는 삼국지는 중국 원·명 교체기의 나관중이 쓴 '삼국지연의'를 뜻한다. 다양한 인물이 매력적인 스토리를 구성하고 특히 조조, 유비, 손권, 관우, 조운과 같은 영웅들이 펼치는 활약상은 독자들의 상상력을 마구 자극한다.
이처럼 흥미진진하고 상품성이 뛰어난 '삼국지연의'는 '수호전' '서유기' '금병매'와 함께 중국 4대 기서로 꼽힌다.
재미있는 점은 '삼국지연의'의 베이스라 할 수 있는 진수가 지은 역사책 '삼국지' 역시 '사기' '한서' '후한서'와 함께 중국 전사사(前四史·고대사를 대표하는 역사책)로 불린다. 원조 사서와 이를 가공한 소설이 '중국을 대표하는 책' 2관왕에 오른 셈이다.
이런 까닭에 중국은 물론 일본, 한국에서도 삼국지는 필독서로 통한다. 우리나라만 해도 이문열·황석영·정비석·고우영 등 적지 않은 작가들이 그들의 시각으로 바라본 삼국지를 내놓은 바 있다.
사실 삼국지는 조선시대부터 베스트셀러였다. 할아버지의 아들, 그 아들의 아들… . 이렇게 이어진 인기는 삼국지를 고전 중에서도 제법 잘 팔리는 상품으로 등극시켰다.
책 중에서도 고전은 특유의 가치와 의미에도 불구하고 읽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사기' '논어' '노자'만 해도 그나마 다행이다. 그리스, 독일, 프랑스와 같은 고전의 본고장으로 통하는 지역에서 나온 고전은 정말 읽기 어렵다. 거기다 어찌나 책이 두꺼운지 장식용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22일 '여류 삼국지'(메디치미디어)라는 또 다른 버전의 삼국지가 나온다. 양선희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저자인데 고전으로는 이례적으로 전자책으로 발간한다.
인류의 농익은 지혜가 쌓인 고전과 21세기 인류의 가장 '핫'한 기술이 담긴 전자책의 만남인 만큼 의미가 크다. '아주 오래된 것'과 '가장 최신의 것'이 앙상블을 이룬다고도 볼 수 있다.
만약 이 실험이 성공할 경우 출판 문화에 혁신이 일어날 수 있다. 전자책이 올해 갑자기 등장한 매체는 아니지만 그간 장르소설, 한물간 베스트셀러 위주로 서비스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삼국지를 필두로 한 고전이 전자책에서도 통한다면 고전의 대중화에 따른 인문학의 평준화, 집단 지성 수준의 향상을 꾀할 수 있다. 전자책에 들어가는 콘텐츠는 스마트폰, 태블릿PC에서도 연동할 수 있기 때문에 지하철, 학교, 회사, 공원이 수시로 고전을 공부하는 강의실로 변한다.
전자책을 통해 고전의 맛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또 다른 고전을 찾을 것이다. 플라톤, 칸트, 헤겔, 하이데거, 루소, 들뢰즈, 마르크스 등이 쓴 고전 역시 전자책이라는 새로운 플랫폼 안에서는 더 쉽게 읽힐 가능성이 크다.
사족 하나, 양선희 작가가 여성이라 '여류 삼국지'라는 제목이 붙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여기서 쓴 여류(餘流)는 '여러 갈래의 사회 사조나 사회 운동에서 주되는 사조 외의 하찮은 갈래' 즉 '비주류'를 의미한다.
어쩌면 '여성 작가가 바라본 새로운 시각의 삼국지'라는 이중적 의미가 있을 지도 모른다. /경제산업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