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도 가장 많은 사람과 차량이 몰리는 곳 가운데 하나, 바로 세종로네거리다. 정부서울청사를 비롯해 세종문화회관과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주한미국대사관, 그리고 주요 언론사들의 사옥 등 대한민국의 오늘을 웅변하는 주요 건물들이 지척이다.
그런데 의미심장한 것이 건물들만은 아니다. 세종로네거리 북동쪽 귀퉁이에 자리 잡은 오래된 건물, 즉 '고종즉위40년칭경기념비전' 구석에 숨겨져 있는 '작은 돌 조각'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가로세로가 채 1m가 안 되는 돌 조각에 평양과 대전, 목포, 대구, 부산 등 전국 주요도시까지의 거리가 한자로 새겨져 있다. 바로 일제강점기에 만든 '도로원표'다.
조선왕조 때까지만 해도 거리 기준점은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 앞이었지만, 1914년 일제에 의해 지금의 세종로 네거리 한가운데로 바뀌었고, 1935년 도로 확장과 함께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일제의 조선 식민지배 당시 '지리적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도량형을 따라 '10리는 4km'로 확실히 굳어진 것도 그 무렵이었다. 한 마디로, 일제의 기준이 이 땅의 모든 것을 좌우하기에 이른 것이었다.
'역사 바로 세우기'에 유난히 관심이 많았던 지난 김영삼정권 시절, 일제가 만든 도로원표를 대체한다며 세종로파출소 앞에 큼지막한 새 도로원표를 세운 적이 있다. 하지만 기준점 자체를 바꾼 것은 아니었다. 바뀌지 않은 것은 지리적 기준점이나 셈법만이 아니었다.
앞서 이승만정권 때 배일 감정을 이유로 표준자오선을 '동경 127.5도'로 바꿨던 7년여를 빼면, 대한민국은 여태껏 1912년 일제에 의해 정해진 일본의 표준자오선, 즉 '동경 135도'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 지금도 기계적 시간과 태양의 실제 위치 사이에 30분 정도 차이가 나는 이유이다.
1990년대 말 들어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이름으로 '서구 따라하기'에 혈안이 되었던 적이 있다. 거의 전 사회적인 분위기가 그랬다. 낙후한 제도를 정비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는 이유가 뒤따랐다. 그러나 광복된 지 68년을 맞는 지금도 '시공간의 기준'은 여전히 일제의 그것을 따르고 있다.
/권기봉 '다시, 서울을 걷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