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드라마의 제왕'을 끝낸 정려원(32)은 전혀 지친 기색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생기가 가득한 얼굴로 "어느 때보다 즐겁게 촬영했기에 또 하고 싶다. 특히 이번 작품을 통해 '드라마에 대한 예의'를 배워서 좋았다"면서 발랄하게 웃었다.
# 드라마와 현실은 비슷하면서도 달라
생방송 촬영, 쪽대본, 작가 교체, 과도한 간접광고(PPL) 등 열악한 드라마 제작 현장을 현실적으로 꼬집은 이 작품에서 그는 작품에 대한 신념과 열정이 강한 작가 이고은을 열연해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배우들이 제작자 회의까지 보는 경우는 없잖아요. 내가 어떻게 캐스팅이 되는 지 몰랐는데, 이번에 알 수 있었죠. 편성이 왜 안 되는 지, 조기종영이 왜 되는 지 등 좋게 포장해 들었던 것들도 제대로 알게 됐답니다."
그러나 "극 중 배우가 작가에게 줄거리를 바꿔달라는 내용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것 같다. 나도 그렇고 주위에서도 그런 담 큰 배우들을 보기 쉽지 않다"고 다른 점도 꼬집었다.
# 이번처럼 편하게 일하기는 처음
전작 SBS '샐러리맨 초한지' 때는 생방송처럼 진행되는 촬영 탓에 쓰러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극 내용과는 달리 일주일에 한 번씩 쉬면서 편하게 촬영했다.
그 흔한 쪽대본을 한 번도 안 줬던 장항준 작가, 빨리 찍고 밤샘 촬영을 하지 않는 홍성창 감독, 프로의식이 투철한 선배 연기자 김명민을 보면서 많은 것들을 배웠다.
"지금까지 촬영장에 제 시간에 도착하는 것만으로 기본은 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김명민 선배는 촬영 한 시간 전에 도착해 세트 동선을 체크하시더라고요. NG도 안내고 의상도 1분 만에 갈아입죠. 이러니 하루를 쉴 수 있는 시간이 나왔어요."
그는 "보통 여배우들은 생방송 촬영에 쫓기다보면 피부가 많이 상하는데 이번엔 반대로 회춘한 느낌이다. 이제서야 비로소 진짜 드라마에 대한 예의가 뭔지를 배웠다"고 소감을 밝혔다.
# 실제보다 체감 시청률은 뜨거워
비록 시청률은 한 자리수에 머물렀지만 체감 인기는 높았다. 평소 패셔니스타로도 유명한 그가 입고 나온 의상들이 매회 화제를 모았고, 주위에서 보여주는 반응도 뜨거웠다.
"첫 회 시청률이 나왔을 때 작가님이 '시청률 앞에 1이 빠진 것 같다'고 해서 웃었던 기억이 나요. 헤어·메이크업 샵에서 만난 동료 연예인들은 '너무 재밌다. 열심히 해달라'고 당부할 정도였죠. 평소 친한 성유리씨는 매 회가 끝날 때마다 다음 줄거리를 물어봤어요."
지난 연말에는 '샐러리맨 초한지'와 이번 작품으로 'SBS 연기대상' 최우수상을 탔다. 그는 "고생했고 더 열심히하라는 의미로 주신 것 같다. 덕분에 군기가 바짝 들었다"고 겸손해했다.
# 새해 목표는 그림 전시회 개최
매 작품마다 촬영장 곳곳과 소품에 자신의 흔적을 남겨놓을만큼 몰입하는 스타일이라 연기한 캐릭터에서 빠져나오는 게 쉽지 않다. 이번에도 역시 마찬가지다.
평소 뛰어난 그림 솜씨를 자랑하는 정려원은 "작품을 끝낼 때마다 캐릭터의 여운을 풀지 못해 그림을 그려놨다. 전시회를 여는 게 새해 목표"라고 말했다.
향후 계획을 묻자 이번 드라마를 계기로 작품을 선택하는 시각이 달라질 것 같다고 털어놨다. 꼭 함께 연기해보고 싶은 상대 배우로는 이선균과 장혁을 꼽았다.
"이제까진 그저 내가 보고 싶고 재밌게 연기할 수 있는 작품을 선택했다면, 이젠 시청자들이 보고 싶어하는 작품에 도전하려고 합니다. 예쁘게 지켜봐주세요."
/탁진현기자 tak0427@metroseoul.co.kr·사진/한제훈(라운드테이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