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소녀의 비참한 삶을 보았다. 영화에 나오는 열 여섯 고도비만의 흑인 소녀 프레셔스는 부모로부터 상상을 초월하는 육체적, 정신적 학대를 받는다. 친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해 두 번의 임신을 하고 엄마는 자신을 딸이 아닌 연적으로 간주하며 욕설과 폭행을 일삼으며 하녀처럼 부린다. 결국 두 번째 임신 때문에 문맹인 체로 학교에서 퇴학을 당한다. 왜 세상의 비참함은 많은 경우 한꺼번에 세트로 몰려올까?
다행히 소녀는 대안학교에서 한 교사를 만나면서 서서히 희망의 변화를 감지하기 시작한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구제불능처럼 보이는 문제학생들을 가르치는 틀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글로 표현하기'라는 방법을 선택했다는 것. 학생들은 매일 아침 자신의 감정을 글로 쓰는 연습을 시작한다. 사랑을 듬뿍 받는 모델이나 가수가 되는 백일몽으로 현실도피하며 일상의 불행을 겨우 버텨가던 소녀들은 서서히 망상에서 벗어나 자신들이 직면한 현실을 보기 시작한다. 내 삶에 어떠한 문제가 있고 나는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담아내다 보면 절로 조금씩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변화는 냉정한 현실인식과 자기인식을 통해 비로서 시작할 수 있음을 교사는 학생들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깨우치도록 한 것이다. 그것은 무너지지 않고 스스로를 돌보고 지켜내기 위한 최소한의 방편이기도 했다.
극한의 괴로움에 차 있을 때 우리는 이 세상의 그 누구도 내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할 거라며 마음의 문을 닫고 '내 안의 세계'에 스스로를 가두어버리고 만다. 그러나 용기 내서 내 안에 있는 그 무언가를 표현해내기 시작할 때, 절망은 서서히 긴 터널을 빠져 나와 희망을 찾을 힘을 가진다. 이 세상에 단 한 명이라도 누군가가 내게 손을 내밀어주고 내게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것, 그리고 그 사랑을 내치지 않고 순수히 받아들이며,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고 다시금 삶을 정면으로 마주할 때, 세상은 그래도 살만함을, 희망을 품을 만하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낀다.
글/임경선(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