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위 대형마트로 군림해온 이마트와 모기업인 신세계그룹에서 벌어진 '직원 사찰 사태'의 충격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이마트는 노조 설립을 막기 위해 직원들을 조직적으로 감시하고 사생활을 캐내는 등 불법 사찰을 실시했다. 신세계그룹은 아예 노조 활동을 차단하기 위해 취업규칙까지 변경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리경영 선도기업'을 앞세워 온 신세계에서 벌어진 불법적 행위들은 치밀하게 진행됐고 적나라했다.
민주통합당 노웅래·장하나 의원이 최근 잇따라 공개한 이마트 내부 자료에 따르면 이마트측은 지난해 10월 노조를 설립했다 해고된 전수찬 위원장을 포함한 34명을 'MJ(문제) 인물'로 분류하고 이들과 친하게 지내는 회사 직원과 그들의 연인관계, 술자리 등까지 감시하고 이를 문서로 만들어 노무담당자들끼리 공유했다. 직원의 여자친구가 민주노총에 근무한다는 사실까지 보고됐다. 심지어 1만5000여명의 직원들이 양대 노총 사이트 회원에 가입돼 있는지를 조회하고 회원인 직원은 해고했다.
심리전을 활용한 여론몰이까지 자행됐다. 이마트는 전수찬 위원장의 해고와 관련, 지점장과 인사·지원팀 간부들에게 e-메일을 통해 "사원들에게 자연스럽게 입소문이 나서 당연히 '짤릴' 짓을 했다는 분위기를 만들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입소문을 내는 구체적인 예시까지 대화문 형태로 제시했다.
노웅래·장하나 의원 측은 "이마트의 이 같은 움직임은 신세계 그룹차원에서 기획된 것"이라고 강조한다. 신세계가 작성한 '복수노조 관련 참고 솔루션' 문건을 보면 직원들은 MJ(문제)·KS(관심)·KJ(가족·친회사적) 등의 영문 약자로 분류됐다. MJ·KS는 면담을 통해 핵심 주동자, 가입자, 가입 예상자, 가입 가능자로 또다시 분류하고 핵심 주동자는 징계하는 방안을 세웠다. 직원들을 5단계 등급으로 나눠 퇴출하거나 밀착 사찰해야 할 이들은 따로 관리할 만큼 체계적이었다.
신세계그룹은 또한 2011년 8월 이마트·신세계백화점·스타벅스·신세계푸드·신세계건설·신세계SI 등 10개 계열사에 '취업규칙 개정 가이드'를 전달했다. 회사비방이나 집단행동을 하거나 유인물·현수막 등을 게시하면 징계해직할 수 있게 했다. 연차유급휴가 사용 시 증빙자료를 제출하지 않으면 무단결근으로 처리하는 조항이 추가됐고 이를 근거로 전수찬 위원장을 해고했다.
이 같은 과정에서 지난해 10월 조합원 3명으로 출범한 이마트 노조는 현재 2명이 해고됐고, 1명은 강등된 상태다. 반면 2011년 '취업규칙 개정 가이드'를 계열사에 발송한 당시 허인철 신세계 경영전략실장은 지난해 11월 이마트 대표이사로 전격 승진했다.
대기업의 직원 사찰 문제가 이렇게 구체적으로 드러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신세계그룹의 행위는 '무노조 경영'에 대한 욕심에서 나온 것이라고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이번 사태가 알려진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이마트 측은 "아직 원인 파악이 안 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마트 관계자는 "2011년 7월 복수노조 설립 허용 시점을 앞두고 경영상 리스크 때문에 대응 시나리오를 작성한 것으로 어느 회사나 했던 일반적인 내용"이라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의 권영국 변호사는 "신세계 등 '무노조 경영'을 하려는 회사나 대응 시나리오를 만드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그는 "노조활동은 잠자는 권리, 밥 먹는 권리처럼 당연한 권리인데도 신세계측은 북한의 '5호 담당제'처럼 직원들을 철저하게 노예처럼 감시해 인간에 대한 존엄성을 끔찍하게 짓밟았다"고 강조했다. 민변측은 이번주 내에 노조 결성을 방해하기 위한 부당노동행위, 사찰을 통한 개인정보침해 등을 근거로 신세계 측을 고발할 계획이다.
파장이 일자 고용노동부도 대응에 나섰다. 이마트의 직원 사찰과 노조탄압과 관련해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하고 있다.
정부의 엄정한 조치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진다. 전수찬 위원장은 21일 메트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2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새 정부가 이 문제에 대해 적극 나설 것을 촉구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