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완 감독이 '베를린'을 연출한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같은 고전적인 느낌의 첩보 스릴러가 나오리라 어렴풋이 짐작했다. 3년전 '부당거래'에서 '액션 키드'가 아닌 이야기꾼으로서의 근사한 자질을 새로 알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일을 벗은 '베를린'은 당초 예상과 달리 '본' 시리즈처럼 매끈하게 잘 빠진 액션물이었다. '부당거래' 이전까지 우직하게 액션 장르 한우물만 파 왔던 류 감독의 오랜 집념이 비로소 만개한 듯하다.
북한 일급 첩보원 표종성(하정우)은 남한 국가정보원 요원 정진수(한석규)와 이스라엘 모사드의 갑작스러운 개입으로 아랍 무기상들을 상대로 한 무기 밀매가 실패로 끝나자 책임자인 베를린 주재 북한 대사 리학수(이경영)과 함께 곤경에 처한다.
북한 군부 핵심의 아들로 대사관을 접수하려 베를린에 온 동명수(류승범)는 표종성에게 대사관 직원인 아내 연정희(전지현)가 배신자라고 귀띔한다. 아내를 의심하기 시작한 표종성은 믿고 따르던 리학수가 미국 대사관에 망명하려는 움직임을 포착한 뒤 그를 붙잡아 동명수에게 넘기지만 뭔가 석연치 않다.
첩보물만의 뒤통수를 치는 반전은 아쉽게도 없다. 줄거리를 음미하며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구석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뜻이다.
돌직구처럼 날아가는 줄거리의 헛점을 메우는 쪽은 역시나 액션이다. 베를린 시내에서의 추격전과 실내 총격전, 결말부의 일대일 맨몸 격투 장면 등은 할리우드를 비롯한 세계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완성도가 출중하다.
다만 표종성의 건물 추락과 폭파 장면 등 일부 대목은 액션을 사랑하는 감독의 오랜 취향이 너무 진하게 반영되다 보니 살짝 리얼리티가 떨어져 과하지 않나란 인상도 남긴다. 31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조성준기자 when@metr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