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닥터둠'으로 불리는 앤디 시에 전 모간스탠리 이코노미스트가 미국 달러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해야 80년대 중남미의 '데낄라 위기'나 97년 아시아 외환위기와 같은 사태를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을 내놨다.
5일(현지시간) CNBC에 따르면, 앤디 시에는 "미국의 양적완화가 올해 하반기 안에 종료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로 인해 향후 5년간 달러 강세를 촉발할 것"이라며 "또 신흥국 시장에 유입된 핫머니가 대거 빠져나가면서 위기를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올 들어 제조업 경기가 9개월래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하는 등 미국 경제에 회생의 조짐이 나타나면서 연방준비제도의 양적완화 프로그램 종료 시점을 둘러싼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이로 인해 고금리를 좇아 신흥국에 유입됐던 핫머니가 한꺼번에 이탈되면 달러 강세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앤디 시에는 "주요 통화바스켓 대비 달러의 가치를 알려주는 달러지수가 향후 3년 안에 현재 80부근에서 25% 오른 100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1980년대 중남미 부채 위기와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를 상기하며 "달러 강세가 신흥국 시장에 또다른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당시와 같은 상황이 재현될 가능성을 우려한 것이다. 달러가 신흥국 통화보다 강세를 보이면 신흥국의 대외부채 이자율 급등을 초래한다.
앤디 시에는 "지난 10년간의 달러 약세 속에 막대한 규모의 핫머니가 신흥국 경제로 흘러들었고, 이는 신흥국 통화 절상과 자산 버블을 초래했다"며 "하지만 달러가 방향을 틀면 유동성 역시 방향을 틀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전의 위기들과 이번 상황이 다른 점도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신흥국 경제에 더 깊숙이 자리잡으면서 신흥국 경제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력이 더 커졌다.
◆달러 강세, 최대 우려는 브릭스
앤디 시에는 가장 우려스러운 신흥국으로 브릭스(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를 꼽았다.
지난 10년간의 달러 약세장에서 국제 투기자본은 브릭스에 끊임없는 러브콜을 보냈다. 앤디 시에는 "이로써 브릭스 국가들은 (핫머니 이탈에) 가장 취약한 상태가 됐다"고 지적했다.
특히 자본시장의 대외 개방 정도가 큰 브라질과 인도의 위기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짚었다.
브라질의 경우, 자국 부채(헤알화 채권)의 12.3%를 외국계 대형 헤지펀드가 쥐고 있다. 앤디 시에는 "이들 헤지펀드는 신흥국 정부의 부채를 사들이는 방식으로 신흥국 경제에 투자했다"며 "15~20년 전에는 이같은 방식이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핫머니 이탈이 신흥국 통화 가치에 보다 직접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셈이다.
인도의 경우, 외국인이 인도 증시에서 30%의 턴오버(투자비중 변경) 비중을 갖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움직임에 인도 증시의 향방이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만 해도 외국인 투자자들은 인도 증시에 230억 달러를 투자했다. 연간 기준 두 번째로 큰 순유입 규모였다.
앤디 시에는 달러 강세장이 돌아오면 외국인 자금이 더 이상 신흥국에 머무를 이유가 없다고 봤다. 그는 "달러가 강세를 보이면 종전 흐름이 뒤집힐 것"이라며 "이는 신흥국 통화의 가치 하락, 인플레이션 증가, 금리 상승, 국채 가격 하락을 초래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신흥국 예전의 약골 아냐" 주장도
물론 앤디 시에의 비관적 전망에 동조하지 않은 증시 전문가들도 있다. 예전보다 신흥국 경제의 펀더멘탈이 튼튼해졌으며, 과거와 달리 신흥국들이 핫머니의 급속한 이탈에 대응 조치를 취할 것이란 점을 근거롤 꼽는다.
다리우스 코왈치크 크레디아그리꼴 아시아(일본제외) 이코노미스트는 "향후 2년간 달러가 유로화와 엔화에 비해 강세를 보일 것으로 예측하지만 신흥국 통화는 달러보다 더 강세를 보일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이어 "역사적으로 볼 때는 물론, 달러 환율이 주요 통화 대비 하락할 때(달러 강세), 신흥국 통화에 대해서도 하락했다"면서도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고 전했다.
신흥국 시장이 더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므로 신흥국의 주식과 회사채의 높은 투자매력이 신흥국 통화의 취약세를 상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 전문가들은 미국 경제의 강한 회복세로 연준이 예상보다 빨리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신흥국과의 금리 격차가 줄어들면서 핫머니 이탈로 신흥국 통화는 부담을 안을 수 있다는 주장을 많이 제기한다.
하지만 다리우스 코왈치크는 "이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