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3월. 소설가 황석영은 북한에서 열린 남북작가회담에 참가했다. 분단국의 작가라는 소명 의식과 함께 북한의 작가들과 교류를 하기 위해서였다.
김일성 주석과도 수차례 면담을 한 황석영은 무엇보다 평범한 북한 사람들이 사는 모습에 주목했다. 당시만 해도 우리 국민은 북한 사람의 머리에는 뿔이 달렸다고 믿었고 밤마다 '자아비판'을 하는 줄 알았다. 한 마디로 북한과 북한 사람은 초현실적 존재였다.
그런데 그가 한국에 돌아와서 낸 '사람이 살고 있었네'라는 책은 제목처럼 북한 역시 사람 사는 곳이고 그곳 사람 역시 우리와 다름없는 '머리에 뿔 없는' 인간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일러줬다.
독자들은 북한을 객관적으로 알게 된 이익을 얻었지만 황석영은 국가 허락없이 북한을 갔다는 이유로 5년간 복역하는 불이익을 당했다.
2013년 1월. 세계 최대 인터넷 기업 구글의 에릭 슈미트 회장은 평양을 방문했다. 북한 인터넷 개방을 촉구하기 위해 방북했다고 밝힌 그는 "북한 정부 관리와 군인은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고 대학에도 사설 인트라넷이 있지만 일반 국민은 감시자가 없으면 인터넷에 접근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이집트 회사와 합작한 3세대 이동통신이 서비스되고 있지만 단문메시지(SMS)만 제공할 뿐 스마트폰을 사용하거나 데이터 접속을 할 수 없다고 전했다.
슈미트 회장과 동행한 그의 딸 소피는 김일성 대학의 도서관을 구경한 뒤 "좌석에 남자만 앉아 있었고 아무도 클릭이나 스크롤을 하지 않고 화면만 보고 있었다"고 강조했다. 소피는 이어 "북한은 나라 전체가 트루먼 쇼 같았다"고 돌직구를 날렸다.
'트루먼 쇼'는 1998년 짐 캐리 주연 영화로, TV 프로그램의 기획 아래 트루먼이라는 사람이 30년간 시청자에게 노출된 채 살아가지만 정작 자신은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정체성을 찾는다는 내용이다.
시대를 대표하는 명사들이 같은 곳을 다녀왔지만 느끼는 바는 이처럼 다르다.
물론 소설가는 '우리는 한민족'과 같은 피가 끓는 그 무엇 때문에 즉 마음이 움직여서 평양 땅을 밟았고, 거대 기업 CEO는 또 다른 수익 창출 도구 확보를 위해 즉 머리가 동해 '미지의 세계'에 입성한 것으로 보인다.
24년의 시간 차를 놓고 두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인문학과 IT의 조화와 균형을 강조하기 싶어서다.
노숙자 생활은 기본이고 베트남전에 파병돼 목숨을 내놓고 살았던 황석영은 너무 인간적(인문학적)이고, 초 단위로 검색 결과와 광고 수익료를 따지는 슈미트는 지나치게 상업적(시각의 IT화)이지 않나 싶다.
다행한 사실은 구글이 북한 인터넷망 오픈을 위해 노력 중인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슈미트 일행이 누구를 만났는지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으나 이후 구글에서 북한의 상세 지도 서비스를 한 걸 보면 김정은과 같은 최고위층으로부터 인터넷 관련 비즈니스를 허가받은 것으로 추측된다.
독일 통일을 앞당긴 것은 TV와 신문이었다. 혹여 북한에 인터넷이 개방된다면 TV보다 훨씬 큰 후폭풍을 가져올 것이다.
몇 년 전 외국의 한 미래예측기관은 2050년 께 한국이 GDP 2위의 초강대국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단 전제 조건은 통일 한국이었다.
보수와 진보를 떠나 통일이 된다면 적어도 경제 부문에서 만큼은 모두에게 이익이 될 것이다. 인터넷이 통일의 초석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사족 하나, 인터넷은 1969년 미국 국방성이 최초로 개발했다. 남북 분단에 영향을 미친 미국이 분단을 없애는 역할을 한다? 이처럼 아이러니한 게 역사인가 보다. /경제산업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