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설 연휴는 예년보다 짧다. '빨간 날'만 오매불망 바라보고 사는 직장인들로선 정말 아쉽고 원통한 따름이다. 빠듯한 휴일에 호주머니 사정도 넉넉하지 않은 요즘, 그나마 마음 편히 갈 만한 데는 역시 극장 뿐이다. 액션·코미디·애니메이션·아트 등 골라보는 재미가 푸짐한 차례상만큼이나 짭짤해서 다행이다.
▶ 때리고 부숴라 = 남북의 정예 첩보원들이 독일 베를린에서 얼키고 설키는 '베를린'과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다이하드' 시리즈의 최신편 '…굿데이 투 다이'는 쓸데없이 잔인한 장면이 거의 없어 가족이 함께 봐도 무방하다. '베를린'은 하정우·한석규·류승범이 합작한 한국적인 총기 액션과 맨몸 혈투가 일품이고, '…굿데이 투 다이'는 민머리 액션스타의 원조 브루스 윌리스가 러시아로 가 환갑이 가까운 나이에도 건재를 과시한다. 두 작품의 무대인 유럽의 고풍스러운 풍광도 또 다른 볼 거리다.
▶ 웃자 웃어 = 코미디들의 대결 구도는 한국영화들끼리의 삼파전으로 압축된다. 딸바보 아빠의 눈물겨운 사랑을 신파조로 얘기하는 '7번방의 선물'과 한 가족의 대책없는 반 제도권 투쟁기를 코믹하게 다룬 '남쪽으로 튀어', 박수가 된 건달의 요절복통 투잡 생활기를 그린 '박수건달' 모두 웃음과 감동을 7 대 3의 비율로 섞었다. 뭘 봐도 일정 수준 이상의 웃음은 얻어갈 수 있지만 웃음에 무게를 둔다면 '박수건달'과 '남쪽으로…'를, 눈물에 더 끌린다면 '7번방…'을 각각 권한다.
▶ 동화와 상상의 나라로 가 볼까 = 안데르센의 동화가 원작인 '눈의 여왕'에선 '과속스캔들'과 '늑대소년'의 박보영과 인기 개그맨 이수근이 눈의 여왕에 맞서는 소녀 겔다와 수다쟁이 트롤의 목소리 연기를 맡았다. '몬스터 주식회사 3D'는 애니메이션의 명가 디즈니·픽사가 2001년 선보여 큰 성공을 거둔 작품으로, 요즘 트렌드에 맞춰 3D 효과를 새로 가미했다. 덕분에 괴물 설리의 보드라운 털이 손에 잡힐 듯이 휘날리는 모습은 더욱 생생해졌다. '파라노만'은 마녀·좀비·유령보다 무서운 인간들의 편견과 야만성을 풍자하는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이다. 이야기가 다소 어두워 12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은 탓에 유아 자녀는 함께 보기 어렵다.
▶ 예술의 그윽한 향기 속으로 =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과 황금카메라상을 각각 받은 '아무르'와 '비스트'는 시끌벅적한 명절일수록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적당하다. '아무르'는 노부부의 가슴 아픈 사랑과 이별을 담담하게 읊조리고, '비스트'는 남극 외딴섬에 사는 한 소녀의 성장 모험기를 환상적으로 묘사한다. 이밖에 뮤지컬 영화로 각종 흥행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레미제라블'도 설 연휴를 관통하므로, 아직 못 본 사람들은 챙겨볼 필요가 있다.
/조성준기자 when@metr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