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人 머니 산업 IT·과학 정치&정책 생활경제 사회 에듀&JOB 기획연재 오피니언 라이프 CEO와칭 플러스
글로벌 메트로신문
로그인
회원가입

    머니

  • 증권
  • 은행
  • 보험
  • 카드
  • 부동산
  • 경제일반

    산업

  • 재계
  • 자동차
  • 전기전자
  • 물류항공
  • 산업일반

    IT·과학

  • 인터넷
  • 게임
  • 방송통신
  • IT·과학일반

    사회

  • 지방행정
  • 국제
  • 사회일반

    플러스

  • 한줄뉴스
  • 포토
  • 영상
  • 운세/사주
사회>사회일반

'감동의 설' 만든 왼손 드라이버

"저는 '잘해야 식물인간'이란 진단을 받고도 기적처럼 살아난 행운아입니다. 그래서 개인적인 바람보다 함께 잘사는 일에 관심이 더 많습니다."

뇌병변장애(3급) 택시기사 장현용(37·사진) 씨의 표정엔 요즘 미소가 넘친다. 설 연휴를 코앞에 둔 지난 6일 장씨의 택시에 올라 이유를 들어봤다.

서울 강남의 평범한 가정의 3형제 중 막내로 태어난 장씨는 일곱 살 때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외상이 없어 다친 줄 몰랐던 장씨를 데리고 뒤늦게 병원을 찾은 장씨의 부모에게 의사는 "포기하라"는 말을 조심스레 건넸다. 뇌출혈이었다."식물인간이 돼도 좋으니 수술만 시켜달라"는 어머니의 애원이 지금의 장씨를 있게 했다.



◆"스치기만해도 인연" 손님과 찍은 사진 6000장이 보물

목숨은 건졌지만 장씨에겐 언어장애와 오른쪽 팔다리 장애가 남았다. 주변에서는 특수학교에 보내라고 했지만 어머니는 '장애아' 낙인이 찍힐까 두려워 입학을 미뤘다. 장씨가 "엄마, 아빠"란 말을 할 수 있게 된 아홉 살에야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중학교 때 집안사정으로 강남에서 금천구 시흥동로 이사했지만 장씨는 전학을 가지 않고 버텼다. 남들보다 공부 시작은 늦었지만 뒤쳐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벽 5시30분에 집을 나서면 2시간 뒤에야 학교에 도착했죠. 집에서 학교까지 멀기도 했지만 불편한 몸으로 지하철을 갈아타다 보니 어쩔 수 없었죠. 그렇게 2년을 꼬박 다녀 겨우 졸업했어요."

대학에서는 신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한때 목회자를 꿈꿨지만 어눌한 말투 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2003년 우연한 기회에 택시운전을 시작했다. 하지만 불편한 오른쪽 팔다리는 12시간의 고된 노동을 버텨주지 못했다. 결국 1년 만에 택시운전을 접었다.

이후 유통업을 하는 친구 일을 도우면서 운전실력이 몰라보게 늘었고 체력도 비장애인 못지 않게 좋아졌다.

◆ 500원 푼돈도 나누면 수천억 온정 목돈

2011년 다시 택시 운전대를 잡았다. 왼손으로 운전하고 왼손으로 사이드브레이크를 채우지만 이젠 좁은 골목길만 아니면 무리없이 운전할 정도다. 손님들은 그런 장씨를 보고 "대단하다" "멋지다"고 덕담을 해준다.

'스치고 나면 그만'이라지만 특별히 고마운 승객들과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힘들 때마다 그 사진을 꺼내 보면 용기가 생겼다.

그렇게 찍은 사진이 6000여 장. 한 승객의 권유로 '스마일 천국택시'라는 인터넷 카페를 개설하고 승객과 찍은 사진으로 작은 전시관을 만들었다. '정모(정기모임)'를 해보자는 제안도 있었지만 장씨는 정중히 거절했다. 그는 대신 승객들에 대한 고마움을 다른 이웃에게 돌리기로 결심했다.

지난해부터 승객들이 받지 않은 거스름돈을 따로 모아 '오백냥 후원금'을 만들었다. 사연을 전해 들은 분들은 차비에 1000원씩 얹어 주기도 한다. 설연휴가 끝나는 12일 첫 후원금이 주인을 찾아간다. 금천구 내 독거노인들에게 쌀을 지원하기로 한 것.

"여러 사람을 만나는 택시운전을 하면서도 늘 사람이 그립거든요. 그런데 혼자 계시는 분들은 어떻겠어요. 그런 생각을 하니 푼돈이지만 제가 함부로 쓸 수 없더라고요."

인터뷰를 마친 오후 6시 '훈남 노총각' 장씨가 어둑해진 거리로 택시를 몬다. "요즘 승객이 많이 줄어 걱정"이라면서도 '짧은 인연'들이 건네준 온정을 다른 어려운 이웃에게 되돌려줄 생각에 싱글벙글이다.

/김유리기자 grass100@metroseoul.co.kr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Copyright ⓒ 메트로신문 & metr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