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가 17일 상무 승진 대상자 17명을 발표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이 가운데 여성이 5명이라는 점이다.
비율로 따지면 30%인데 보수적으로 유명한 국내 대기업이 이처럼 여성을 고위직에 올리는 것은 21세기인 지금도 드문 일이다.
어쨌든 이번 인사로 KT의 여성임원은 8명에서 13명으로 늘었다. 전체 임원 가운데 차지하는 비율은 11.3%다.
물론 여성 임원 비율에서 선두라 할 수 있는 KT가 가야할 길은 여전히 멀다. 유통 기업 중에서는 여성 CEO가 속속 등장하고 있는데다 HP, 구글, 야후와 같은 글로벌 IT 기업에는 여성 최고 임원이 즐비하다.
그런데 혹자는 말한다. KT를 비롯한 대기업들이 여성 임원 승진을 운운하지만 사실은 남성 중심 조직구조의 들러리일 뿐이라고.
한마디로 여성 임원 승진은 대외 홍보용이고 실질적인 기업 운영이나 정책을 짜는 것은 죄다 남자들이라는 얘기다.
듣는 여성도, 잠재적 가해자가 된 남성도 기분 나쁜 말이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 역사 속 전례가 없지 않다. 역사는 현재를 보여주는 거울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50%에 가까운 시청률을 올리며 국민드라마로 인기를 끌었던 '주몽'. 주인공은 주몽이지만 그의 파트너인 소서노가 이 드라마를 계기로 인지도가 크게 올라갔다.
고대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없는 일반 시청자들은 오죽했으면 소서노를 가공의 인물이라고 생각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소서노는 우리나라 유일의 여성 건국자다. 고구려는 남편 주몽과, 백제는 아들 온조왕과 더불어 세팅을 했다.
김만덕 역시 실존 당시에는 잔다르크 급 활약을 했음에도 일반인에게는 매우 낯선 위인 중 하나다.
조선 정조 때 제주 도민은 잇따른 재해로 아사 위기 직전에 있었다. 정부가 지원 식량을 보냈지만 배까지 침몰하면서 적지 않은 도민들이 죽음의 카운트다운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 장사로 돈을 많이 번 기생 출신 김만덕이 사재를 털어 쌀 500섬(약 900가마)을 구해 도민에게 공짜로 풀었다. 김만덕이 아니었다면 제주 4·3사건 만큼이나 충격적인 일이 생길뻔 했다.
김만덕의 선행은 정조의 귀에도 들어갔고, 그는 임금의 배려로 당시 사대부 양반 남성이나 가능했던 금강산 구경을 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소서노와 김만덕이 일반인에게 생소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름아닌 남성의 억압 탓이다.
고대국가와 고려의 역사서는 대부분 불에 타거나 유실된 상황이고 그렇다면 조선시대 역사서밖에 남지 않는데 조선의 깐깐하고 가부장적인 유학자들이 쓴 사서에 두 여성이 있는 그대로, 아니 최소한 왜곡되지 않은 채로 기록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건국자 소서노는 ▲일부종사를 거부한 과부 ▲정실이 아닌 일종의 첩 ▲남편의 뜻을 거역하고 집 나간 여성으로, 제주 도민을 구한 김만덕은 ▲결혼을 거부한 불온한 여성 ▲남자가 해도 중인 취급받는 장사를 한 상인 ▲천민과 다름없는 기생 출신 등의 이유로 올바르게 평가받지 못한 셈이다.
쉽게 말해 여자는 집에서 살림 잘하고 애 잘보고 남편·시부모 잘 모시면 되는데 안 해도 되는 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했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남성인 그들도 못한 일을 여성이 했다는 데서 오는 자괴감을 이런 식으로 치료했던 것은 아닐까.
KT의 이번 여성 임원 승진이 남성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 아닌 KT 자체를 돋보이게 해야 하는 이유다. /경제산업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