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개봉될 '신세계'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배우를 고르라면 단연 황정민(43)이다. 여수 화교 출신의 건달 보스 정청 역을 맡아 특유의 건들거리면서도 인간미 넘치는 연기로 생동감을 불어넣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위의 이같은 호평에 그는 "함께 출연한 (이)정재나 (최)민식 형님에 비해 액션이 많아 외면적으로 그렇게 보일 수 밖에 없는 캐릭터"라며 "정삼각형의 인물 구도에서 균형을 맞추려 노력했을 뿐"이라고 겸손하게 답했다.
▶ 작품 캐스팅부터 촬영까지
선택 과정에서 원톱이고 아니고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이전처럼 좋은 작품은 단역으로라도 출연하는 게 옳다고 생각해서였다.
전작 '부당거래'의 시나리오 작가였던 박훈정 감독과 스태프가 다시 뭉치고, '연기 9단' 최민식이 일찌감치 출연을 마음먹었던 것도 흔쾌히 합류를 결심한 계기였다. "민식 형님이 먼저 들어 와 계시고 정재까지 출연한다는데 캐스팅 제의를 거절하면 바보죠. 또 사적으로도 무척 친한 제작진이 '재미있게 일해보자'고 꼬드기는데 안 넘어갈 수 없었어요."
조직에 위장 잠입한 언더커버 경찰 이자성 역의 이정재를 보면서는 '부당거래'에서 자신이 연기했던 최철기가 떠올랐다. 별다른 움직임과 표정 없이 짧은 대사로만 내면의 갈등을 전달하는 점이 많이 닮아서였다. 당시 힘들게 촬영했던 경험이 생각나 "답답해 미치겠다"며 하소연하는 이정재에게 위로와 조언을 수시로 건넸다.
정중동의 감정을 유지해야만 하는 이정재와 최민식을 의식해 연기 수위를 낮출까 고민도 했다. 그러나 어렵게 내린 결론은 시나리오가 그린대로 충실히 연기하자는 것이었다. 자신의 캐릭터가 살지 않으면 덩달아 최민식과 이정재까지도 묻혀버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 결과 주연 배우들의 호흡만큼은 최근 공개된 한국영화들 가운데 가장 차진 작품이 나오게 됐다.
▶ 인물 감정에 초점 맞춰 보세요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와 중국어 연기에 도전했다. 전라도 사투리는 마당극 경험이 있어 비교적 쉬웠지만, 중국어는 정말 어려웠다.
극중 수족인 변호사 역의 실제 화교 배우가 모든 대사를 녹음해줘 촬영 두 달전부터 달달 외웠으나, 발음과 억양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후시 녹음때 대역을 염두에 두고 현장에선 마음 편히 연기했어요. 그랬더니 잘했다며 다시 녹음할 필요 없겠다고 칭찬하더라고요. 개봉후 중국어에 대한 지적이 나오면 제작진한테 책임을 돌릴 생각입니다. 하하하."
누아르 장르치고 액션 장면이 많지 않은데다 호흡 역시 빠르지 않아 살짝 아쉽다는 의견도 있다. 여전히 2G 피쳐폰을 애용하고 있는 황정민 또한 '빠름~빠름~'에 익숙한 젊은 관객들이 어떻게 봐 줄지 걱정이 많다.
액션에 집중하기 보다는 캐릭터들의 감정을 따라가주길 하는 바람이다. 관객들이 서로 다른 목적을 위해 질주하는 세 인물을 보면서 '나라면 어떤 길을 선택할까' 한 번쯤 고민하게 된다면 더 할 나위없이 기쁠 것같다.
▶ 향후 활동과 목표
두 달후면 강우석 감독과 손잡은 '전설의 주먹'이 개봉된다. 이 영화에선 격투기 리얼리티쇼에 출연하는 고교 시절 파이터 출신의 국수집 사장 역을 맡아, 석 달 넘게 술을 끊고 강훈련을 소화하며 복근까지 어렵게 만들었다.
40대 중반으로 달려가고 있지만 아직은 몸 쓰는 연기가 견딜 만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이탓인지 추위에 갈수록 약해지고 있어 큰일이라고 이내 털어놨다. 매니저에게 농담삼아 "겨울에 촬영하는 작품은 가급적 피하자"고 얘기했을 정도다.
지난해에는 뮤지컬 제작과 연출, 주연에 영화까지 바쁘게 뛰었다. 올해는 잘 쉬면서 일하는 게 목표다. 4월 크랭크인 예정인 '퍽퍽한' 느낌의 멜로물을 끝내고 나면,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과 함께 볼 수 있는 전체상영가 등급 영화에 출연하길 희망한다. "아이의 성장이 작품 선택에 많은 영향을 주죠. 배우란 직업에 앞서 가장이라면 당연한 마음일 듯싶어요. 기가 막힌 가족영화 어디 없을까요?"
·사진/한제훈(라운드테이블)·디자인/양성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