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초등학생에게 태블릿PC를 주겠다.", "근로 시간을 주 20시간으로 단축하겠다."
이탈리아 유명 코미디언 출신 베페 그릴로(63·본명 주세페 피에로 그릴로)가 이끄는 '오성운동'의 선거 공약들이다. '오성운동'은 유로존을 탈퇴하고 긴축 재정을 거부하겠다는 공약도 내걸었다. 공약들은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이지만 25일(현지시간) 끝난 총선에서 이탈리아 국민은 뜨거운 지지를 보냈다.
이번 총선에서 '오성운동'은 25%에 가까운 득표율을 기록하며 제3당으로 도약했다. 특히 민주당과 자유국민당이 30%에 못 미치는 득표로 안정적인 정부 구성이 불가능한 상황이어서 이들의 약진이 더욱 두드러졌다.
'오성운동'은 정치풍자 코미디언이었던 그릴로가 직접민주주의 확대와 '반부패', '반EU'를 기치로 내걸고 2009년 창당했다. 지난 두 차례 지방 선거에서 시장과 시의원을 배출하며 이탈리아 정계를 뒤흔든 바 있다. 이번 총선 직후 CNN은 그릴로를 '이탈리아 총선의 어릿광대 왕자'로 묘사했다.
1980년대 이탈리아 TV 쇼 '판타스티코'에서 사회당 출신 베티노 크락시 총리의 부패를 신랄하게 비난했던 그는 이로 인해 1987년 TV 출연 금지 조치를 당했다. 이후 거리로 무대를 옮겨 정치권에 독설을 퍼붓고 다양한 퍼포먼스를 펼치며 젊은층의 열렬한 지지를 받기 시작했다.
실제로 오성운동 후보들은 정치 경험이 거의 없는 청년들이 대부분이며 평균 연령도 42세로 정당들 가운데 가장 낮다. 선거 운동 과정에서 오성운동은 급진적이고 비현실적인 공약을 내걸어 인기영합주의와 이상주의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경제 위기의 해법을 제시하지 못한 기성정당에 환멸을 느낀 유권자들의 지지를 한몸에 받았다.
한편 이번 총선이 어느 한쪽의 일방적 승리 없이 끝나면서 이탈리아 정국은 안갯속이다.
현 집권 세력인 피에르 루이지 베르사니가 이끄는 중도좌파 세력인 민주당은 하원에서 과반수를 차지하며 승리했다. 하지만 상원에서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의 자유국민당과 '오성운동'이 50% 이상을 차지할 전망이다.
베르사니 민주당 당수가 새로운 연립정부 구성을 주도하려 하겠지만 성격이 전혀 다른 정치 세력 간 연정이 순조롭게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벌써부터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재선거의 가능성이 공공연하게 거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