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국, 일본이 지배하던 글로벌 IT 시장이 한·미 양강 체재로 재편되고 있다.
소니, 파나소닉, 샤프를 앞세워 글로벌 리더 역할을 했던 일본이 2000년대 초반부터 급락세를 나타내더니 급기야 샤프의 실질적 대주주가 삼성전자로 바뀌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글로벌 IT시장은 삼성·LG를 필두로 한 한국과 애플·구글·마이크로소프트가 호령하는 미국이 주도하는 모양새가 됐다.
일본을 대표하는 IT기업 샤프는 6일 삼성전자와 자본·업무 제휴 사실을 공표했다.
삼성이 샤프에 1167억원 규모의 자금을 지원하고 샤프 지분 3%를 얻는다는 내용이다. 이로써 삼성전자는 현지 금융기관을 제외하고 샤프의 최대주주로 등극했다.
일본의 글로벌 IT기업이 한국 회사로부터 큰 규모의 자금 수혈을 받은 사례가 전무할 뿐더러 사실상의 최대주주가 됐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은 IT 업계 역사에 한 획을 그을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 1월 삼성전자가 일본의 유명 IT기업인 와콤의 지분을 인수할 때만 해도 단순한 업무 협약 수준으로 해석됐다.
갤럭시노트 등에 들어가는 S펜을 개발한 와콤 지분 5% 획득과 함께 2대주주로 등극하며 '부품 공급 안정'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날 삼성이 샤프를 사실상 인수하면서 와콤 인수가 '일본 IT 기업 평정의 서막'이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샤프 자금 지원 이유에 대해 삼성전자 측이 "LCD 패널을 오랜 기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서"라며 재차 공급망 안정을 강조한 까닭이다. 어센텍, 유튜브, 모토로라모빌리티와 같은 IT기업을 먹어치우고 있는 애플, 구글의 행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오래 전 소니의 시가총액을 추월한 삼성전자는 이미 애플, 구글에 이어 주식 가치가 가장 높은 IT회사로 자리매김했다. 최근에는 LG전자도 소니, 파나소닉의 시총을 넘어선 상태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일본 언론사들도 이번 사건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삼성전자가 샤프의 최대주주가 됐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이번 제휴는 라이벌 관계를 넘어 새로운 시장 재편의 계기가 될 가능성도 있다"고 보도했다.
일각에서는 삼성의 이번 인수가 이미 구축된 한·미 양강 체재를 한국쪽으로 무게 중심을 가져오려는 시도로 보고 있다.
삼성이 아이폰 시리즈 액정 전용 공장을 운영 중인 샤프를 소유하면서 애플까지 압박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해 애플은 삼성과의 특허 분쟁을 이유로 아이폰5의 부품공급선을 다변화했지만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실적을 올렸다. 삼성 제품에 비해 질이 떨어진 것은 물론 할당량도 채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요 부품 공급처인 샤프마저 주인을 위해 애플에 등을 돌린다면 삼성이 유리해진다.
익명을 요구한 글로벌 IT기업 관계자는 "일본 IT 산업이 내수에 치중하느라 외부 시장에 적절한 대응을 못했다. 생존 위기에 처한 샤프가 자존심까지 챙길 여력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노키아와 소니 사례를 보듯이 IT 기업이 추락하는 것은 한 순간이다. 게다가 중국이 떠오르고 있어 방심은 금물"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