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연가인 박재훈(43·가명) 씨는 지난 주말 인근 수퍼마켓에서 담배를 사려다가 말다툼까지 벌였다. 담뱃값 인상 논의 뉴스에 놀라 평소 애용하는 '○○담배' 세 보루를 미리 사두려고 했는데 수퍼 주인이 "한 보루 이상은 판매할 수 없다"고 버텼기 때문이다. "담배가 있는데도 왜 팔지 않느냐"고 항의했더니 "사재기 하는 것 같아서"라는 핀잔만 돌아왔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담뱃값 인상 논의가 전해지면서 벌써부터 사재기 부작용이 빚어지고 있다.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이 최근 담뱃값을 2500원에서 4500원으로 2000원 올리는 내용의 지방세법 및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을 발의해 한 보루를 미리 사두면 무려 2만원을 절약할 수 있다는 계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개인 물론 소매상 점주들 사이에서도 담배를 미리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다.
10일 서울 은평구 한 편의점 판매원은 "평상시 보다 담배 판매량이 4배 이상 증가했다"며 "특히 평소에는 거의 없던 보루 단위 구매 손님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대형마트의 담배 판매도 급증하고 있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꾸준히 감소추세이던 담배 매출이 인상 논의가 전해진 6일을 전후해 30% 이상 급증했다"고 전했다.
국제공항 면세점 담배 코너도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평상시 담배를 피우지 않은 탑승객들까지 담배 구입에 나서면서 계산을 위한 긴 줄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담뱃값이 실제 오를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역대 정권에서도 수차례 시도했지만 고소득층보다 서민층에 더 부담이 크다는 논리에 부딪혀 번번이 실패한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이다.
담뱃값은 2004년 2000원(국산 기준)에서 2500원으로 오른 뒤 9년째 동결된 상태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담뱃값을 올려 흡연율을 낮춰야 한다는 데는 누구나 공감하고 있지만 물가에 미치는 충격파가 만만치 않아 관련 부처들과의 협의가 쉽지 않다"며 "수년 후의 담배 가격 인상을 미리 예고해 사재기와 같은 부작용을 최소화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이국명기자 kmlee@metr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