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는 현재 적잖은 이들이 즐기는 스포츠로 자리매김해가고 있다. 전국에 산재한 골프장만도 400여 곳에 이른다. 하지만 워낙에 넓은 공간을 소수의 골퍼들만 이용하기에 '귀족 스포츠'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애당초 소수만을 위해 만들어졌던 골프장이 다수의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한 사례도 있다. 서울 능동에 있는 어린이대공원이 대표적인 예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의 비 순명황후의 능이 있던 서울 어린이대공원 자리에 골프장이 들어선 것은 일제강점기였던 1929년이었다. 경성 골프 구락부(클럽)가 영친왕으로부터 땅을 대여받아 최초의 18홀 골프장을 만든 것이다.
당시 이용자는 조선총독부나 조선은행, 동양척식주식회사의 관리나 고위급 군인, 친일 귀족이나 부호, 그리고 서울 주재 외교관 정도였다. 소수 특권층의 전유물이었던 셈이다. 그 뒤 태평양전쟁과 한국전쟁을 거치는 사이 잠시 운영이 중단되기도 했지만 골프장의 명맥은 오랜 기간 이어졌다.
경기도 고양시 원당으로의 골프장 이전 결정이 내려진 것은 1970년 즈음이었다. 이듬해에 있을 제7대 대통령 선거 때문이었다. 해마다 어린이를 위한 신년 메시지를 발표하고 어린이회관을 세우기도 했던 박정희 대통령에게,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던 골프장을 미래의 희망인 어린이들에게 내어준다는 것은 자신의 서민 이미지를 제고하는 데 더 없이 좋은 소재였기 때문이다.
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공사를 강행한 끝에 제51회 '어린이날'인 1973년 5월 5일에 문을 연 어린이대공원... 현재 동물원 등을 제외한 놀이시설에 대한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한국 근현대사의 복잡다단한 역사들이 오롯이 녹아 있는 어린이대공원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돌아올까? 소수의 공간에서 모두의 공간으로 탈바꿈한 어린이대공원이 부디 위정자나 어른들의 욕망을 채우기보다는 어린이들에게 진정 필요한 공간으로 거듭나길 기대해 본다.
/권기봉 '다시, 서울을 걷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