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살 된 딸을 둔 회사원 조민준(40)씨는 요즘 MBC '일밤 - 아빠 어디가'를 즐겨 본다. 스타 아빠와 자녀가 여행하며 마치 친구처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모습에 공감하고 자극받을 때가 많다. 그 역시 얼마 전부터는 친구·동료들과의 술자리보다는 아이들과 공연·영화를 보거나 같이 음식을 만드는 데 많은 시간을 쏟으려고 노력 중이다.
대중문화가 전국의 아빠들에게 '착한 아빠'를 권하고 있다.
권위가 강조되던 가부장적인 아버지상 대신 자녀와 놀아주고 소통하며 사랑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친구 같은 아버지, 즉 '프렌디'('프렌드'+'대디'의 합성어)가 예능 프로그램과 영화에서 대세로 자리 잡는 중이다.
SBS '땡큐'도 전직 메이저리거 박찬호와 연기자 차인표가 딸들과 보내는 일상을 보여주고, 게스트로 나온 만화가 이현세와 사진작가 김중만의 극진한 자녀 사랑을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 역시 자녀를 위해 육아일기를 직접 쓰는 김강우의 이야기로 감동을 전했다.
여섯 살 지능을 가진 아빠와 딸의 사랑을 그린 영화 '7번방의 선물'은 비록 이상적인 아버지상과는 거리가 멀지만, 자녀와 친구처럼 놀아주고 사랑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부성애를 친근하게 앞세워 1200만 관객을 동원했다.
이 같은 모습은 기존의 대중문화가 보여주던 아버지상과 확연히 다르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안방극장과 스크린에는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 속 고집 세고 자기 주장만을 내세웠던 '대발이 아버지' 같은 캐릭터가 주를 이뤘다. 90년대 후반 IMF가 터지며 경제위기로 추락한 아버지를 다룬 작품들이 등장하며 조금씩 달라졌지만, 지금의 친구 같은 아버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대발이 아버지' 사라지고 소통하는 아빠 대세
가부장적 권위의 해체를 상징하는 신세대 아버지상이 대중문화에 반영되기 시작한 건 2000년대부터다. KBS2 '해피선데이 - 남자의 자격'처럼 아버지 개인의 자아실현 및 행복에 초점을 맞춘 작품들이 등장했고 최근 들어서는 가족, 특히 자녀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외연을 확대했다.
요즘의 변화는 바뀐 사회상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아버지 중심이었던 전통적인 사회 구조가 무너지고 현실 속 남녀의 성 역할 관계가 흔들리면서 아버지의 가족내 위치도 재정립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변화에 발맞춰 최근 남성 가장들은 전통적으로 여성의 몫으로 여겨지던 요리·육아·교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몇 년 전부터는 친구 같은 아버지 되기 등 가정 내 역할을 잘 수행하는 방법을 교육하는 아버지 학교도 늘고 있다.
한 아버지 학교의 마케팅 담당자는 "교육 정책이 기존의 어머니 위주에서 아버지도 가담하도록 책임을 늘리면서 대중문화도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바뀌기 시작했다"면서 "최근 '아빠 어디가'의 윤민수·후 부자를 보면서 많은 아버지들이 부러워한다"고 귀띔했다.
방송평론가 정덕현씨는 "노동 집약적인 기존 사회에서는 아버지의 권위가 셀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정보사회로 바뀌면서 창의력과 여성성이 강조되고 여성들의 사회 진출도 활발해지면서 입지가 좁아져 자연스레 가정으로 눈을 돌리게 됐다. 대중문화는 이런 사회상을 반영한 것"이라고 사회의 변화에서 원인을 찾았다. 또 "지금의 30대 중후반 이상 아버지 세대는 예전 권위주의적인 아버지 밑에서 힘들게 살아온 기억 때문에 가족과 같이 보내는 시간을 중요하게 여겨 가정에서 행복의 의미를 찾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대중문화 전반에 불고 있는 '힐링' '가족' 트렌드가 아버지상을 이상적인 형태로 포장해 과도하게 소비적인 측면에서 다룬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직장인 손상진씨는 "자식 사랑하는 마음은 같아도 모습은 다 다를 수 있다"면서 "보다 현실적이고 다양한 모습의 아버지상을 보고 싶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