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젠더 연예인 하리수(38)는 솔직하고 거침없이 자신의 인생을 이야기했다. '드랙퀸'(다음달 5일부터 6월2일까지 SH아트홀)에서 여장남자 역을 맡아 데뷔 13년 만에 처음으로 뮤지컬에 도전하는 그는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기지 못하면 그게 삼류"라고 말했다.
# 화장품 CF로 데뷔…캐릭터 아픔 공감
드랙퀸(화려한 여성 복장을 하고 다양한 쇼를 선보이는 남성을 지칭)들의 이야기를 유쾌하게 담은 이번 작품에서 클럽 블랙로즈의 사장이자 우아하고 지적인 프로 쇼걸 오마담을 연기한다. 뮤지컬 '헤드윅' 등 여장남자가 등장하는 기존 작품들에선 주로 남자 배우들이 주인공을 도맡았지만, '드랙퀸'에선 하리수가 낙점됐다.
쇼를 하는 여장남자 역이라는 점에서 언뜻 하리수의 실제 삶과 통하는 면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자세한 배역 설명에 앞서 다르다는 것을 먼저 강조했다.
"열여섯 살 때부터 무대에 올라 쇼를 펼쳤다는 점에선 비슷하지만 정작 여장남자로는 살아보지 않았어요. 여장남자는 평상시엔 남자로 살면서 여장을 즐기는 사람들인데, 저는 늘 스스로 여자라고 생각하면서 여자가 되려고 노력해왔으니까요. 실제 삶과는 약간 다르지만 저만의 색을 입혀서 표현하려고 합니다."
다만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삶을 살면서 아픔을 겪은 인물이라는 점에서는 공감했다고 털어놨다. "어릴 적엔 사랑하는 사람에게 떳떳하게 고백할 수도 없었고, 주변에서 여자냐 남자냐며 손가락질을 하고 놀림의 대상이 되기도 했어요. 다행히 엄마가 나를 믿어줬기에 나쁜 길로 빠지지 않았죠."
2001년 화장품 CF로 국내 최초의 트랜스젠더 연예인으로 데뷔한 그는 가수로 활동하면서 인기가 높아진 후에도 캐스팅이 취소되고 계약이 파기되는 등 부당한 일을 겪었다고 고백했다. "사람들이 가수나 배우가 아니라 그저 트랜스젠더로만 대했죠. 반면 외국에서는 부당한 대우를 받은 적이 없었어요."
지난 4년간은 주로 압구정에 있는 트랜스젠더 클럽을 운영하면서 일본·중국 등을 오가며 활동했다. 지난해 7월 새 앨범 '더 퀸'을 발매했지만 국내보다 해외 활동에 주력했다.
이번 작품은 오랜만에 국내에서 본격적인 연기를 펼치게 된 기회인 만큼 애정이 남다르다. 앞서 트랜스젠더 역으로 출연한 홍콩영화 '도색'(2004)과 MBC '떨리는 가슴'(2005)으로 좋은 평가를 얻은 바 있다.
"예전에 친한 친구와 동생이 몇 시간 차이로 자살한 일이 있었어요. 그때 더 열심히 활동해야겠다고 다짐했죠. 지금은 트랜스젠더 역이든 여장남자 역이든 다른 사람이 표현할 수 없는 역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아요."
# 루머 신경 안 써…해외 활동 병행
뮤지컬에 데뷔하면서 처음으로 본명인 이경은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하리수는 "집과 시댁에서 불러주는 이름"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작품에 대해 남편 미키정의 반응을 묻자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는 무조건 지지해준다. 극중 키스신이 있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면서 결혼 7년차에도 여전한 애정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내 활동이 뜸하면서 결별설, 폭행설 등 여러 루머에 시달리기도 했다. "있지도 않은 루머들이 자꾸 생기는 것 같아요. 얼마 전에는 엄마와 함께 집에 있는데 엄마 친구분에게 전화가 와서 '방금 한증막에서 하리수를 봤다'고 하는 일까지 있었죠. 게임에서 제 이름을 사칭하고 아이템을 받는 사람도 있어요. 루머는 신경 쓰고 싶지 않아요."
또 한동안 성형설에 시달리다 최근 12년 전 미모의 모습이 새삼 화제가 돼 사람들의 입에 다시 오르내리기도 했던 그는 "이제 나이가 마흔에 접어든다"면서 "이십대 중후반 때의 얼굴과 지금을 비교하면 안 된다. 지금의 나는 아줌마고 주부다. 나이에 맞게 변하는 걸 즐긴다"고 평범한 30대 후반 여성의 모습을 강조했다.
당분간은 틈틈이 해외 활동을 병행하면서 뮤지컬에 주력할 예정이다. "여장남자와 일반인의 사랑 이야기지만 주변 사람들도 공감할 수 있을 작품이랍니다. 이 사람들의 삶이 조금 다를 뿐이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전해주고 싶어요."
사진/서보형(라운드테이블)·디자인/박선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