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말이겠지만 국가나 도시, 동네는 저마다의 이름을 갖고 있다. 유럽의 경우엔 크리스트교와 관련한 이름이, 아메리카의 경우엔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그리고 영국 등 식민 모국의 지명이나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을 본따 지은 것들이 많다. 그렇다면 우리의 경우엔 어떨까?
서울의 경우 동쪽 지역인 성동구와 광진구, 동대문구 지역엔 유독 말과 관련한 이름들이 많이 남아 있다. 마장동과 장안동, 면목동, 광장동, 그리고 자양동과 모진동, 송정동 등이 그러하다.
먼저 마장동은 말을 놓아 기르던 목장이 있었기에 붙은 이름이다. 웅마장이라고 해서 숫말만 키웠던 마장동과는 달리 암말만 키워 자마장이라 불렸던 자양동은 자마장리가 수차례 바뀌면서 생겨난 이름이다. 송정동 역시 숫말을 기르던 국영목장이 있어 숫마장이라고 하다가 음이 변해 솔마장벌로, 그것이 한자로 바뀌면서 송정동이 된 것이다.
이 외에도 목마장 안쪽의 너른 들판을 뜻하는 장안동과 목마장으로 드나드는 문에 면해 있어 면목리라 불린 면목동, 역시 너른 마당이 있어 말에 여물을 먹이던 곳을 뜻하는 광장동까지, 일대가 모두 말과 관련한 지명들이다.
그 중에서도 재밌는 게 광진구 모진동이다. 옛날 모진동 지역은 흙이 물러서 수렁이 곧잘 파였다고 하는데, 목마장에 방목하던 말들이 이곳에 빠지면 버둥거리다가 기민맥진한 나머지 죽어버리기 일쑤였다고 한다. 이를 발견한 근처 주민들이 죽은 말을 건져 고기를 나눠 먹곤 했다는데 그 모습을 본 근처 주민들이 이곳 사람들을 일컬어 모질다는 의미로 모진동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말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이 지역의 이름들... 실제로 한양대학교 안에는 말의 조상과 처음 말을 기른 사람, 그리고 처음 말을 탄 사람 등에게 제를 올리던 제단인 마조단이 있었다. 마장동엔 1989년 경기도 과천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경마장이 있었고, 지금은 각 지방의 축산물이 모이는 대규모 축산시장이 들어서 있다.
요즘엔 동네 이름을 한글로만 표기하다 보니 정작 그 이름이 품고 있는 뜻을 알기 힘든 경우가 많다. 하지만 조금만 관심을 갖고 들여다 보면 그 속에는 정말 놀라운 역사와 의미들이 녹아 있기도 하다.
/권기봉 '다시, 서울을 걷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