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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봉의 도시산책] 서촌에서 만난 식민지의 흔적



서촌에서 만난 식민지의 흔적

최근 들어 서촌, 그러니까 서울 종로구의 통의동과 누상동, 옥인동 일대를 일부러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카페나 음식점들이 비집고 들어가며서 상업적인 느낌을 폴폴 풍기는 북촌과는 달리 아직까지도 거주용 한옥들이 많이 남아 있는 고즈넉한 동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촌 골목을 걷다 보면 한옥 외에 일본식 건물들도 발견할 수 있다. 통의동 대림미술관 근처에 있는 집들이 대표적이다. 기와를 얹은 모습이 한옥과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일본식 건물들이다. 바로 일제강점기 때 동양척식주식회사 직원들이 살던 관사다. 애초 조선 21대 왕인 영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 살던 창의궁 터였지만, 식민지가 되면서 그 운명이 바뀌고 만 것이다.

동양척식주식회사는 줄여서 '동척'이라고도 한다. 일제가 조선의 토지와 자원을 수탈할 목적으로 설치한 식민지 착취기관이다. 이들은 대한제국 정부로부터 국유지를 강제로 불하받거나 매입하는 방식으로 막대한 면적의 농토와 삼림을 가로챈 뒤 일본인 이주자들에게 헐값에 양도했다.

그리고 일부는 조선인 소작인들에게 빌려준 뒤 50%가 넘는 고율의 소작료를 징수했으며, 영세 소작농에게 빌려준 곡물에 대해서는 20% 이상의 고리를 추수 때 현물로 거두어 들였다. 조선인들의 경제적 자립 기반을 허물고, 일본인들의 조선 이주를 장려하기 위한 술책이었다.

그 결과 수십만 명의 조선인들은 토지를 잃고 북간도 등으로 이주해 갈 수밖에 없었던 반면, 1942년 당시 동척은 16만 헥타르 이상의 임야를 소유하고 있을 정도였다. 조선총독부가 정치적인 방식으로, 조선은행이 경제적인 방식으로, 그리고 일본 군경이 무력으로 조선인을 억압하고 수탈했다면, 동양척식주식회사는 토지를 수단으로 삼아 조선인의 삶을 망가뜨렸다.

그랬던 동척이 있던 서울 을지로2가에는 지금 현재 외환은행 본점이 들어서 있을 뿐 당시의 흔적은 찾을 길이 없다. 동척에 폭탄 투척 의거를 한 나석주 열사의 동상만이 우두커니 서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직원들이 살던 통의동의 동척 관사만은 1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서른 채 가량이 남아 있다. 1970년대 들어 상당수가 고급주택으로 변했고 남아 있는 건물들마저도 겉모습이 일부 바뀌긴 했지만, 지난 식민지 시대의 기억만은 아직도 오롯하다./'다시, 서울을 걷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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