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들이 보내주는 사연 중에 최근 유달리 많이 보이는 질문은 '좀 더 나답게 살고 싶지만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라는 사연이었다. 보다 획일화되어가는 이 시대에 자아를 마주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지고 있다. 나를 안다는 것은 뭘까. 혹자는 매일 밤 거울 보며 '나는 어떤 인간인가. 나는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대화를 나누라 하고 어떤 이는 블로그나 노트에 일기를 쓰며 자기 마음을 들여다 보라고도 한다. 그렇게 한들, 말할 거리도, 쓸 거리도 없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나를 알아간다는 것'에는 반드시 어떤 계기가 필요하다. 거기에는 반드시 어떤 물리적인 자극과 충격이 필요하고 그에 대한 나의 반응이나 행동이 뒤따라야 나에 대한 감이 비로소 조금 잡힌다. 내가 상처받는 상황이 자초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을 그렇게 '움직여야 하는' 상황에 가져다 놓기 보다 다음의 행동들을 보인다. 첫째, 나에 대해 단정짓기. 자신에 대해 모르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은 나 자신을 '이렇다'라고 단정짓는 것이다. 나한테는 무리니까, 난 이것 밖에 못하니까, 라며 나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고 내 발을 붙들어매는 것이다. 여분의 것들이 낀 것을 걷어내는 게 더 큰 일이다. 둘째, 나를 비웃기. 나에겐 뭐가 있지? 내가 뭘 할 수 있지? 이렇게 질문을 던지면 또 하나의 내가 나를 비웃고 있다. 난 아무 것도 못하잖아. 그냥 현실에 만족하고 살아. 그게 무난해. 실제로 뭔가를 해보기보다 '아냐, 됐어'라며 내 부푼 마음을 누르는 데에 힘을 더 쓴다. 마지막으로, 주어가 없다는 것. '나도 뭔가를 하고 싶다'라고 할 때 '무언가'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 생각이 없는데 그저 '하고 싶다'에만 방점을 찍고 있다.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살고 싶다면 내가 움직이고 실천하고 모험하는 것 말고는 아무런 방법이 없다. 무난하게, 요령있게, 타인의 도움을 받아 '나'를 발견할 수는 없다. 무엇을 원하는지 찾으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허둥지둥' '스스로' 찾는 것 밖엔 없다.
글/임경선(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