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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서애-우 학봉'으로 끝난 유림 위패싸움

위패 서열을 놓고 400년 가까이 시비를 벌여온 문중과 후학간의 싸움이 완전히 해결됐다.

경북 안동시 월곡면 소재 호계서원(당시 여강서원) 이석희 복설추진위원장은 14일 "1620년부터 시작된 병호시비(병산서원과 호계서원간의 시비)가 종지부를 찍었다"고 밝혔다.

병호시비는 조선 중기 학자 학봉 김성일(1538~93)과 서애 류성룡(1542~1607)의 위패 서열을 놓고 양측 문중과 후학들 간에 벌여온 영남 유림의 대표적 논쟁이다.

1573년 건립된 여강서원에는 학봉의 위패가 봉안된 뒤 1620년 서애 위패를 모시면서 누구의 위패를 퇴계 이황의 왼쪽에 둘 것이냐를 놓고 393년간 싸움을 벌여왔다.

벼슬의 높낮이로 서열을 정해야 한다며 영의정을 지낸 서애의 좌배향을 주장하는 측과 나이가 많고 학식이 더 뛰어난 학봉 좌배향론이 팽팽히 맞서왔다.

이후 1812년 학봉파 사이에서 호계서원에 대산 이상정의 위패를 추가로 모시자는 주장이 제기되자 서애파는 반발하며 호계서원과 절연했다.

흥선대원군이 나서 양측을 중재하려다 실패하자 호계서원은 철폐됐다.

결국 각 문중은 퇴계의 왼쪽에는 서애의 위패를, 오른쪽에는 학봉의 위패를 봉안하는 내용의 호계서원 복설 결의문을 15일 채택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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