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졸 신화.'
학벌이 사회적 성공과 출세를 보장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아직 이같은 용어가 유효하다. 최근 불어 닥친 '고졸 채용'의 바람이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지만 고졸이라는 극심한 차별을 이겨내 '직장인의 꿈'을 이룬 사례가 아직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뜻이 있으면 길은 있는 법. 한국표준협회가 고졸 출신으로 대기업 전무자리에 올라 '고졸 신화' 아이콘으로 불리는 윤생진 대표의 강연회를 마련해 젊은이들의 꿈에 희망을 보탠다. 전국 5개 지역에서 열리는 이번 강연회는 표준협회 홈페이지(www.ksa.or.kr)를 통해 신청 후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메트로신문은 강연회에 앞서 윤 대표의 성공스토리를 살펴본다.
"제 꿈은 이 회사에서 부장이 되는 것입니다."
생산 기능직으로 입사한 27세 청년 윤생진의 대답에 돌아온 것은 조롱 섞인 핀잔뿐이었다. 실컷 놀림을 받은 신참은 그 날 집에 있는 거울 밑에 '윤생진 부장'이라고 커다랗게 써붙였다. 윤생진 창조경영연구소 대표의 고졸신화는 이 날부터 시작됐다.
일주일동안 잠을 자지 못하고 고민한 윤 대표의 결론은 '인생을 바꾸자'였다. '대졸사원이 할 수 없는 분야에서 최고가 되자'는 생각으로 현장의 제안왕이 되기로 결심했다. 당시 현장에서는 현장에 근무하는 사원이 근무일지를 작성해 보고서로 올렸는데 이 때 개선이 필요한 사항이 있을 경우 제안서를 함께 만들어 첨부하곤 했다. 윤대표는 바로 이 제안서에 승부를 걸기로 했다.
먼저 간부들의 눈에 띄기 위해 제안서를 영어와 한문을 섞어 작성했다. 특히 모든 보고서에는 구체적으로 대안을 달았다. 대졸사원에게 없는 현장 능력을 자신만의 강점으로 내세우기 위해 모든 공정을 연구하며 파고들었다. 잠은 하루 4시간 이상 자지 않았으며 시간이 아까워 밥을 먹으면서도 제안서를 썼다. 이렇게 해서 1983년 1800건의 제안서를 올렸다. 보통 현장 사원이 제안하는 건수가 일년에 서너건임을 감안하면 엄청난 숫자다. 결국 1985년에는 2000건 이상을 써내며 '제안왕'으로 등극했다.
성공가도를 달릴 것 같았던 윤대표는 곧 좌절을 맛봤다. 올려지는 제안 중 70%는 버려진 것. 고졸 주제에 영어와 한문으로 제안서를 매일 몇 건씩 올리는 기능직이 있다며 동료들의 시기와 질투를 받기도 했다.
◆나는 AFAF 인생을 원한다
그럴 때마다 윤대표는 스스로 '3할대 타자'라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런 윤대표에게 결정적인 기회가 찾아왔다. 당시 타이어를 만드는 과정 중 완제품을 만드는 기계에 쓰일 윤활유를 만드는 절차가 있었다. 유약을 먼저 넣은 뒤 분말을 집어넣어 저으며 섞어 윤활유를 만들었는데 잘 섞이지 않고 분말이 넘쳐 한 통 섞는데 족히 30분은 걸렸다. '왜'를 끊임없이 되새기던 윤대표는 집에서 부인이 커피 타는 것에 착안, 분말을 먼저 넣고 유약을 섞는 방식으로 공정을 개선하자고 제안하였다. 간단한 제안이었지만 효과는 놀라웠다. 작업시간은 반으로 줄었고 1500억원의 비용 절감 효과가 발생했다.
윤대표는 공장 생산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관리팀으로 발탁, 주임이 됐다. 고졸은 주임이 될 수 없다는 '불문율'을 깬 샘이다. 대졸사원이 주임이 되기까지 3년이 걸리지만 윤대표는 12년이 걸렸다. 이렇게 대졸사원의 틈에 끼게 됐지만 여전히 벽은 높았다. 이를 깨기 위해 윤 대표는 또 한 번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밤낮없는 연구의 결과 금호그룹 최초로 국제품질관리대회에 국가대표로 참여했다. 일본 도쿄대회 발표장에서 한복에 꽹과리를 치며 발표한 그의 모습은 신문에 대서특필됐고,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초청으로 청와대에서 성공사례를 발표하게 됐다.
이 사건으로 그는 회장님에게 발탁이 되어 대리에서 차장으로 2계급 특진, 회장 부속실로 배치됐다. 게다가 서울대 대학원까지 진학하는 기회를 얻었다. 그야말로 파격인사였다.
윤대표는 "어떤 한 분야에서는 최고가 되는 사람이 결국 이 세상의 리더가 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는 못하는 것을 다른 사람과 같이 따라하려 하지 않고, 잘하는 것은 누구도 따라할 수 없을 만큼 노력을 한다. 다시 말하면 BBB인생을 원하지 않는다. AFAF인생을 원한다. 즉, 모든 과목에서 B의 성적을 내며 남들과 비슷하게 하는 것보다, 못하는 과목에서는 F를 받아도 내가 잘 할 수 있는 과목에서는 A를 받는 것이 낫다는 말이다.
이런 노력으로 두 번의 2계급 특진 끝에 6년만에 대리에서 상무자리에 올랐다. 그룹총괄 본부에서 함께 근무하던 최고 명문대 출신의 대리들도 상무가 되려면 15년 이상이 걸린다. 윤대표는 금호그룹에 몸담은 32년간 7번의 특진을 기록 했고 절반을 회장 부속실에서 보낸 후 전무로 퇴임했다.
◆한 번이라도 세상을 긴장시켜본 적이 있는가
고졸출신이 전무로 퇴임했으면 성공한 인생이 아니냐는 물음에 윤대표는 나는 아직 인생의 반도 안왔으며 무궁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답한다. 지금 그는 60이 넘은 나이에도 새로운 에너지, 대체에너지를 개발해서 이 세상을 긴장시키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가지고 끊임없이 연구와 노력을 하고 있다. 앞으로 21세기는 하겠다는 의지, 하고 싶다는 열정, 할 수 있다는 확신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한다. 윤대표는 "조직은 약속하지만 책임지지 않는다며 미치게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