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기 전엔 몰랐던 것들
류동민/ 웅진 지식하우스
욕설과 막말로 점철된 음성 파일 하나로 온 나라가 들썩였다. '욕설 파문'의 당사자인 남양유업의 전 영업직원과 피해대리점주는 결국 14일 검찰에서 만나 대질 심문을 받으며 얼굴을 맞댔다. 이들은 다시 서로에게 화살을 겨눠야할까.
앞서 한 항공기 승무원과 호텔 직원은 일터에서 소위 '라면 상무' '빵 회장'에게 맞았다. 사람들은 '갑의 횡포'라고 분개했지만 이들은 언제나 갑이고, 또 을일까.
일터에서 불거진 억울함과 분노, 울분이 이처럼 다양한 곳에서 솟구친 적이 없다. 일하기 전엔 몰랐던 부당함을 이제 알고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왜인지도 모르게 괴로운 밥벌이를 하고 있는 이들에게 저자인 류동민 교수(충남대 경제학과)는 특정 개인의 탓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우리나라 경제의 구조가 이익은 위로, 위험은 아래로 쏠리는 형태로 변질됐기 때문이라고 꼬집는다.
저자는 구체적인 일의 현장을 바라봤다. 재벌기업이 인증하는 '경제이해력'을 입증하기 위해 시험을 치르는 대학생부터 후미진 위성도시에서 출근길 만원 버스에 올라타기 위해 뛰어야하는 직장인, 개인사업자 자격의 대치동 학원 강사, 하루에 100여 군데를 배달해야 겨우 일당을 맞추는 택배 노동자, 품위 유지를 위해 회사 근처 술집이나 당구장에서 놀아서는 안되는 '일류' 기업 사원 등 이들이 하고 있고, 하고 싶어하는 '일'이라는 게 어떻게 생겨나고 관리되며 변하고 있는지를 찬찬히 더듬어갔다.
가장 주목하는 건 승자독식 구조다. 경제학교과서가 묘사하는 완전경쟁의 아름다운 수학적 세계란 없다는 것. 기득권은 대기업이나 고소득층의 지갑이 채워지면 그 이익이 아래로 흘러내린다는 이론을 내세우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기업은 영세 자영업자나 노동자에게 빨대를 꽂고 이익은 위로 빨아올리며 위험을 분산한다.
밤새 문을 열고 손님을 받는 식당 주인이나, 소득의 많은 부분을 밥값과 통신비 등 노동력 재생산에 써야하는 직장인들은 스스로 자기 착취에 내몰린다. 누가 누구를 고용했는지도 모르고 점처럼 단절돼 가는 일터는 노동자란 의미도 흐릿하게 만들었다. 비정규직에게 문자 메시지로 해고를 통보하는 게 당연해지는 건 무서운 현실이다.
경제학 교과서 같은 세상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하는 저자는 '톨레랑스(관용)'를 강조한다. 살겠다고 오늘도 아등바등 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동자인 동시에 소비자라는 현실을 직시하고 부당한 것은 '안 하는 편'을 택하자고 주문한다. 그래야만 밥벌이의 지겨움도, 서러움도, 괴로움도 서서히 없어진다는 희망에서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
●어제까지의 세계
재레드 다이아몬드/ 김영사
더 나은 미래의 모습을 오래된 전통 사회에 비추어 그려낸다. '총, 균, 쇠'로 퓰리처상을 받은 문화인류학자 다이아몬드 교수의 문명대연구 3부작 완결편이다. 아마존 원주민 등 바로 어제까지 우리와 함께 존재했던 전통 사회에서 노후를 즐겁게 살아갈 지혜, 아이들을 자유롭게 양육하는 비결 등 일곱 가지 생활양식을 제안한다.
●허기사회 주창윤/ 글항아리
우리 사회를 '열심히 노력해도 살아가기 힘든 무기력증의 시대'라 진단한 주창윤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는 '정서적 허기'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밥을 먹었으면서도 빈 밥그릇을 보면서 허기를 느끼는 현상이 관계 맺기의 집착, 퇴행적 위로, 나르시시즘의 과잉, 속물성에 대한 분노로 나타나고 있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