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략으로 표출된 그릇된 역사인식
일본 정치 지도자들의 극우적인 망언이 잇따르고 있다. 독도 영유권에 대해서는 물론 위안부를 매춘부와 동일시하는 발언도 쏟아진다. 아예 태평양전쟁에 있어 일본의 침략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언급에도 망설임이 없다. 아베 신조 총리가 직접 그 앞장에 서 있다는 자체가 보통 일이 아니다.
최근 자민당의 재집권 이후 확연히 드러나는 모습이지만, 그 왜곡된 역사인식의 뿌리는 깊고도 넓게 퍼져 있다. 지리적으로 동양권에 속해 있으면서도 유럽의 문물을 받아들여 개화에 앞섰다는 역사의 미화작업이 그 출발점이다. 즉, '탈아입구'에서 비롯된 우월적 인식이 한국과 중국에 대한 침략 합리화에 한몫을 거들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미야지마 히로시 교수가 최근 역저인 '일본의 역사관을 비판한다'에서 내세우는 요점이다. 이런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진정한 이웃으로서의 관계 회복도 요원할 수밖에 없다. 그가 2002년 도쿄대학에서 성균관대학 교수로 옮겨와 한일 역사인식의 차이와 오해를 규명하는데 노력해 왔다는 점에서도 귀담아 들을 만한 얘기다.
중요한 사실은 일본 역사의 특징을 캐내려는 과정에서 한국의 역사가 가장 가까운 비교대상이 되기 마련이었다는 점이다. 적어도 도쿠가와 시대부터 유학자들 사이에 일본의 봉건제와 조선의 군현제를 비교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며, 더구나 조선이 중국에 종속된 나라로 간주됨으로써 일본의 우월성이 제기됐다는 게 저자의 견해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봉건제 논의를 유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유럽 역사에 등장했던 봉건제를 경험했다고 해서 동아시아 지역에서 일본의 우위가 강조되기 때문이다. 비단 역사학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학문 분야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담론이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임진왜란으로 표출됐던 정한론이 메이지 정권에 들어 다시 고개를 쳐들게 되는 것도 이런 인식에 따른 현상이었다. 하지만 이는 과거 역사의 비판 결여로 초래됐던 결과다. 임진왜란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과대망상에서 시작된 무모한 침략시도였다는 점에 있어서는 대체로 학계의 의견이 일치한다는 사실이 그 증거로 제시된다.
미야지마 교수는 일본의 계몽사상가로서 게이오의숙 설립자인 후쿠자와 유키치에 대해서도 현미경을 들이댄다. 현재 1만엔권 지폐에 초상이 그려져 있울 만큼 영향력을 지녔던 인물이지만 그의 유교 인식에 근본적인 오류가 있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유교에 대한 개인적인 편견으로 인해 유교사상이 지배하던 한국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으며, 그것이 한국병합론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저자가 일본의 진보적 경향의 연구자들까지 두루 비판의 대상에 올리고 있다는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일본 사회가 서구적 봉건제를 겪은 것으로 파악하는 점에서는 탈아입구적 관점의 보수적 연구자들과 하등 다르지 않다고 파악한다.
일본의 그릇된 역사인식은 세계 곳곳에서 "역겹고 혐오스럽다"는 비난에 직면해 있다. 일찍이 유태인 학살을 사죄한 독일이나 영국이 케냐를 식민지로 거느리면서 저질렀던 탄압사례에 대해 화해 움직임을 보이는 것과도 구별된다. 지금껏 외길로 한국사 연구에 매달려온 일본 역사학자의 진솔한 학문적 고백과 비판이 양국의 역사인식에 어떻게 수용될 것인지 지켜보게 되는 이유다. /허영섭(언론인·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