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훈의 IT도 인문학이다 -알라딘 요술램프와 3D프린터
요술램프를 얻은 알라딘은 요정의 도움으로 공주는 물론 화려한 보석과 성을 얻는다.
이 요정은 램프를 닦으면 '펑' 하고 튀어 나와 "주인님 소원을 말씀하세요"라고 말한다. 오더를 받은 요정은 미션을 곧바로 수행해 주인 앞에 가져다 놓는다.
'아라비안 나이트'에서 가장 유명한 일화 가운데 하나인 '알라딘과 요술램프' 내용의 일부다. '천일야화'를 영어로 옮긴 '아라비안 나이트'는 페르시아, 인도, 이집트 등 아랍 민족의 전래동화를 엮은 것이다.
유물과 유적지 등으로 공식 확인된 이들의 시원은 BC 3500년으로까지 올라가는 만큼 '소원을 들어주는 요정'과 같은 형이상학적 객체의 역사는 아주 오래된 셈이다.
그런데 형이상학적인 요정이 2013년 구체적인 형태로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다. 다름아닌 3D프린터다.
3D프린터는 큰 틀에서는 일반 프린터와 큰 차이가 없다. 기계가 글이나 그림을 인식해 대량 복제하는 방식이다. 차이가 있다면 기존 프린터는 잉크로 인쇄를 하지만 3D프린터는 플라스틱 가루가 잉크 역할을 하면서 복사체를 진짜 물건으로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해외에서 3D프린터로 만든 권총이 논란이 된 것도 이 때문이다. 3D프린터를 살 수 있다면, 권총 설계도만 구할 수 있다면 누구나 총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3D프린터의 정확성은 '치명적'일 만큼 뛰어나다. 이미 이 기기를 이용해 제품을 만드는 업체가 적지 않다.
문제는 칼이 무를 자르는 기구이자 사람을 죽이는 흉기이기도 하듯, 3D프린터가 양날의 검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역사상 가장 영향력이 큰 '두 얼굴의 요정' 말이다.
권총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3D프린터를 나쁜 쪽으로 쓰려고 마음 먹으면 끝이 없다. 3D프린터 업계의 설명을 들어보면 이미 일부 자동차 회사에서 제품을 이용하고 있으며 의류 쪽에서도 도입을 검토 중이다.
3D프린터가 자동차를 만들 정도라면 비용과 정확성의 문제가 개선된다면 헬리콥터나 탱크도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다른 뜻'을 지닌 일부 개인이 악용할 소지가 있다.
명품 옷은 물론 시계, 신발, 가구 등 성능이나 디자인에서는 사실상 진품이나 다름없는 짝퉁 천국시대가 올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선한 일에 쓸 수 있는 경우의 수도 많다. 20일 서울삼성병원은 3D프린터를 활용해 암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수술 부위를 3D프린터로 찍은 것과 CT, MRI와 같은 기존 영상의학장치로 확보한 것은 리얼리티에서 큰 차이가 난다고 한다. 의사 입장에서는 CT로 찍은 이미지가 자갈길이었다면, 3D프린터로 확보한 이미지는 아스팔트길이나 마찬가지다.
빈곤한 이웃을 도울 때도 '21세기의 요정'은 막대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의식주 가운데 '식'을 제외하고는 저가·대량생산할 수 있게 도와주기 때문이다.
보통 3만원은 줘야하는 캐주얼 와이셔츠의 경우 3D프린터가 일반화하면 최소 3000원 수준으로 가격이 떨어질 전망이다.
다시 알라딘과 요술램프로 돌아가보자. 램프를 얻기 위해 알라딘을 동굴로 보낸 마법사는 결국 공주를 꼬드겨 뜻을 이룬다.
3D프린터를 일반적으로 쓰게 될 가까운 미래의 우리는 알라딘의 공주처럼 마수의 유혹에 쉽게 노출될 것이다. 공주는 유혹에 넘어갔고 급기야 마법사에게 납치되는 불상사를 겪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경제산업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