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팔자에 없던 도시락을 꼬박꼬박 싼다. 아이가 유치원 놀이터에서 해가 질 때까지 실컷 놀기를 바라는데 그러면 저녁식사시간이 늦어지고 내 마음이 급해져 집에 가자고 아이에게 자꾸 잔소리를 하게 되기 때문이다.
집에 남아있는 반찬으로 적당히 도시락을 싸서 나오면 아이는 여유롭게 내키는 만큼 충분히 놀 수 있다. 그런데 지난 금요일 내 몸 컨디션이 안 좋아 처음으로 도시락을 못 싸가지고 갔더니 아이가 덜컥 실망한다.
"왜? 기다렸는데! 난 도시락 먹고 싶어!" 언성을 높이며 속상한 마음을 주체할 수 없는지 나를 꼬집고 때린다. 이렇게 엄마를 꼬집고 때린 적이 처음이라 놀라기에 앞서 아이가 정말 엄마표 도시락을 많이 기대했었구나 싶어 일단 고마웠고 이렇게 말과 행동으로 정직하게 원망하고 항의한다는 게, 이 아이는 내가 자기 마음을 다 받아줄 거라고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날 믿고 있구나, 싶어 짠했다.
이런 일화를 겪으면서 이젠 꼼짝없이 월요일부터는 다시 힘내서 맛없는 엄마표 도시락을 싸야하는구나 싶었지만 그보다도 아이의 그 정직함이 사무치게 부러웠다. 현대인들은 인간관계에 있어서 이기적이라지만 그보다는 '취약'해진 게 더 정확하지 않을까?
우리는 점점 나의 불만이나 불행을 상대에게 토로하거나 부딪히질 못한다. 갈등을 못 견디거나 내가 상처를 줌으로서 상대가 더 큰 상처를 줄까봐 두렵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그렇게 부딪혀서 내가 얻을 게 과연 뭔가'라는 일종의 체념이 더 크게 작용한다. 어른들은 안다.
사랑한다고 해서 두 사람이 서로를 충분히 이해하거나 충족시키는 건 아니라는 것을. 대개는 어느 거리까지 가면 벽과 결핍을 느끼기 마련이라 바로 그 앞에서 멈추고 다른 먼 산을 쳐다보고 마는 것이 현명함을. 나를 깊이 채워주고 끝까지 안심시켜주는 단 한 사람이라도 이 세상에 존재한다면 좋겠지만 참 쉽지가 않다.
내 아이도 어쩌면 어느 순간부터는 더 이상 내게 당당하게 요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쓸쓸함, 슬픔, 절망감이 깃들지 않는 사랑은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긴 하겠지만, 과연 그게 어디일까. 글/임경선(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