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남구청역 골목에서 국내 최초 팥 테마 카페 '로쏘사'를 운영하는 박유진 대표가 메인 메뉴 '로블'을 만들고 있다. 로블은 일종의 마시는 팥빙수로 박 대표가 직접 개발한 팥 음료 베이스에 팥 알갱이, 버블 떡, 우유, 얼음 등이 들어간다. 대기업 공채 합격증을 버리고 창업한 박 대표는 "작더라도 나만의 사업을 하고 싶었다"면서 "창업 과정이 힘들고 몸도 고되지만 마음은 뿌듯하다"고 웃었다. /사진=손진영기자 son@
창업은 꿈이 아닌 현실이다.
드라마나 영화 속 주인공처럼 멋지게 사표를 던지고 창업해 성공하는 사례는 해변에서 바늘 찾기보다 힘든 게 사실이다. 소위 '버티는 게 성공'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창업의 길은 멀고도 힘들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 험난한 여정에 도전하는 젊음층이 늘어나고 있다. 깨지고 부서질 각오로 기꺼이 모험과 혁신을 즐기는 '기업가정신'이 이들 덕분에 살아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창조경제'를 슬로건으로 내건 새 정부가 젊은 창업자들을 적극 지원하고 나선 이유이기도 하다.
머리를 짧게 깎고 병원 신세를 져가면서도 기업하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는 젊은이들을 통해 '제2의 벤처붐'을 꿈꿔본다.
서울 강남구청 인근에서 국내 최초 팥 테마 카페 '로쏘사'를 운영하는 박유진(25)씨.
박씨는 늘 7평 남짓한 매장에서 마시는 팥빙수 '로블'을 만든다. 달지 않은 팥 앙금 베이스와 팥 알갱이, 흰 우유, 버블 떡, 얼음을 알맞게 배합해 손님에게 드릴 때 가장 행복하다. 카페 창업 8개월밖에 안 됐지만 벌써 손익분기점도 넘겼다.
하지만 창업 과정은 역시 순탄치 않았다. 2011년 여름 박씨는 대기업 신입사원 연수 첫날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에게 창업 선전포고를 했다.
"아무래도 나는 창업이 길이야!"
동국대 경영학과 수석 졸업 후 대기업 공채에 합격했던 딸의 폭탄선언에 가족들은 '멘붕(멘탈 붕괴)'이었다.
집에 업소용 제빙기 3대를 들여놓을 정도로 팥빙수 마니아였던 박씨는 '팥'을 소재로 한 음료·디저트 개발에 눈을 뜨게 됐다.
계구우후(鷄口牛後). '소꼬리 대신 닭의 머리가 되자'는 각오를 지닌 박씨는 경영학과 진학 후 창업 동아리 활동과 창업론 수업을 들으며 창업의 꿈을 키웠다.
박씨는 가족들에게 창업 열정을 증명하겠다는 목표로 각종 창업대회에 출전하며 좋은 성과를 보였다.
경쟁이 치열한 중소기업진흥공단 청년창업사관학교 2기에 합격한 지난해 초에는 창업 준비에 전념하기 위해 허리까지 기르던 긴 생머리도 싹둑 잘랐다.
박씨는 "사관학교 면접 때 식품 비전공자란 지적을 많이 받았다"면서 "하지만 '파트너도 없고, 식품에 대해 모릅니다. 그래도 할 자신이 있습니다. 알기 위해 창업을 하겠습니다'라고 당당히 말해 심사위원들의 호평을 받았다"고 말했다.
카페 창업은 초기에 난항을 겪었다.
사업계획서만 100번 이상 고쳤다. 식품 공부를 위해 전국 식품 전공 교수 300명에게 e메일을 보냈지만 답장이 온 것은 3통에 불과했다.
박씨는 "답장을 해주신 경희대 호텔관광대학 최수근 교수님 소개로 대기업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식품업체를 소개받을 수 있었다"면서 "전문가 자문을 받아가며 팥 음료 베이스 농축액 공동 개발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또 "최근에는 농촌진흥청 제휴로 국내 최초 팥차 상용화에도 성공했다"면서 "각종 창업대회 출전 및 창업사관학교 공부로 얻은 인맥, 자신감, 경험이 큰 자산이 됐다"고 덧붙였다.
2년여의 철저한 준비 기간을 거쳐 박씨는 지난해 11월 카페 로쏘사를 차렸다. '로쏘(ROSSO)'는 팥을 상징하는 붉은색의 이탈리아어, '사(SA)'는 사회적 책임의 준말이다.
딸의 창업 열정에 마음이 움직인 부모님은 집 담보 대출로 종잣돈 1억5000만원을 마련해주시기도 했다.
카페를 차린 후에는 하루 12시간 이상 일했다. 웃으며 손님을 상대하느라 얼굴에는 경련이 왔고 다리는 퉁퉁 부었다. 설거지 때문에 손 마디마다 굳은살이 박혔다. 피로 때문에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지만 '링거 투혼'을 발휘하며 악착같이 출근했다.
청년 창업을 꿈꾸는 또래에게 박씨는 "취업 안된다고 창업이나 할까란 생각은 택도 없다. 창업은 계획이 60%면 실천·보완이 40%로 키보드만 두드리지 말고 업계 경험을 쌓아라"면서 "창업하면 직함만 좋지 정말 힘들다. 창업에서 파트너,기술력,자금,체력이 가장 중요한만큼 철저한 준비가 필수"라고 조언했다.
또 "팥 테마 카페를 창업하고 싶다고 할 때 대부분 '독특하지만 시장성이 없다'고 비관적이었다"면서 "다행히 단골이 늘고 손익분기점을 넘길 정도로 선전하고 있다. 창업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휩쓸리지 않을 정도의 가치관 정립이 먼저"라고 덧붙였다.
점심 시간 피크를 맞아 열심히 손님을 맞던 박씨는 해외 진출의 포부도 밝혔다.
그녀는 "창업 지원 프로그램이 IT에만 편중되지 않으면서 각종 창업 규제가 완화되면 좋겠다"면서 "로쏘사를 스타벅스 능가하는 세계적 브랜드로 만들고 개인적으로 글로벌 식품기업 크래프트사 최고경영자(CEO) 아이린 로젠펠드처럼 되고 싶다"면서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