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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노동/복지/환경

'산모신생아도우미지원사업' 수기공모전 수상작

가사간병방문도우미사업·산모신생아도우미지원사업 수기공모전 수상작 ②

보건복지부 산하 (재)중앙자활센터와 메트로신문이 진행한 '가사간병방문도우미사업·산모신생아도우미지원사업 수기공모전' 당선작을 2회에 걸쳐 게재한다. 두 번째 순서로 산모신생아도우미지원사업 보건복지부 장관상 수상자인 경북 영천지역자활센터 손정은씨의 수기 '어미새의 희망찾기'를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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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새의 희망찾기' - 경북 영천지역자활센터 손정은(도우미)

새벽바람이 아직은 쌀쌀한 봄인가 했더니, 아카시아 향기가 여름을 알립니다. 저는 세 아이의 엄마이며 한 집안을 이끌어 나가는 38세의 여성가장입니다. 지금부터 저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 살아오며 영천지역자활센터의 산모도우미에 이르기까지의 10여년 간의 이야기를 펼쳐 놓으려고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한 번의 좌절과 희망은 생긴다고 합니다. 전 그 좌절과 희망을 길지 않은 인생에서 어쩌면 벌써 다 겪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옛날 같으면 여자 혼자서 자식을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을까요.

요즘도 옛날만큼은 아니지만 홀로서기를 과감하게 결심한 28살 엄마에겐 어린자식 3명을 데리고 산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비 없는 자식'이란 말을 듣게 될까 싶어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지' 굳게 마음먹었지만 이혼녀인 제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기저귀도 떼지 못한 연년생 어린 자식 셋을 데리고 잘 곳이 없어 어린이집에서 낮에는 보조교사로 일하는 대신 밤에는 잠자리를 제공받으면서 하루하루를 전전긍긍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이 일마저도 어린이집이 문을 닫는 바람에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아직 엄마 손을 많이 필요로 하는 어린자식들 때문에 아이들을 맡아줄 보육기관에 맞춰 늦게 출근하고 일찍 퇴근하는 일자리를 찾기란 힘들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핸드폰 고리 만드는 부업거리를 가져와 하면서 5평 남짓 셋방에서 네 식구 생활을 근근이 유지 했습니다. 불행은 함께 닥쳐오나 봅니다. 부업거리를 제공해주던 회사가 부도가 나는 바람에 몇 개월 치 말린 임금마저도 못 받게 되고 선천적으로 심장이 약하게 태어난 막내아들 건강마저 무척 안 좋아졌습니다.

사는게 너무 힘들어 아이 셋을 부둥켜안고 울기도 참 많이 울었습니다. 열심히 살려는데 왜 저에게만 이런 일이 생기는 건지, 세상을 많이 원망했습니다.

이렇듯 절망감과 포기란 단어를 생각할 때쯤 제게 조그마한 희망이 생겼습니다. 영천지역자활센터란 곳을 찾았습니다.

처음에 동네 읍사무소에서 지역자활센터를 가르쳐 주었지만 부끄러움과 민망함으로 가기를 꺼려하고 미루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용기를 내어 찾아간 영천지역자활센터는 저에게 마지막 희망이 되었습니다.

무얼 할 수 있을까? 의문을 가진 저에게 지역자활센터 담당자는 저의 가정형편과 생활, 어떤 일을 원하는지, 이것저것 물으시면서 어떤 일자리가 있는지 자세히 들려주었습니다. 평소에 아이들도 참 좋아하고 인생에 있어 가장 오랫동안 해왔던 일도 아이 돌보는 일인터라 산모도우미 사업단에서 일하고자 희망했습니다.

제 아이 키운 적 밖에 없어 사업초기엔 신생아 돌보는 일이 두렵기도 했지만 정기적인 기초교육, 보수교육 실습을 통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초기에 느꼈던 그 두려움이 자신감으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아기를 낳고도 산후조리를 못해 힘들어하는 산모, 다문화가정의 산모 등 다행스럽게도 우리 주위엔 참 많은 분들이 내손을 필요로 하셨습니다. 갓 태어난 아기들을 돌보며 생명의 귀중함과 내 몸의 건강함에 대한 감사함을 느꼈고, 포기하지 않는 내 삶에 대한 다른 기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또한 사업단 동료들도 나처럼 힘든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동변상련이라고 혼자서 애 키우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잘 이해하며 서로 다독거리면서 때론 친정 엄마처럼 때론 친언니처럼 대해 주었습니다. 이혼녀라며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이 싫어 어디 가서 힘든 내색도 잘 못하던 내가 사업단 동료들과는 허물없이 지낼 수 있었습니다.

열심히 일해서 애들 공부도 시키고 돈을 모아 사람답게 살아야겠다는 계획과 함께 커가는 아이들에게 자랑스런 엄마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가슴속으로 되뇌며 하루하루 최선을 다했습니다.

떨리는 맘으로 산모의 집에 처음 들어섰던 당시, 산모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환한 웃음으로 첫 일을 시작했던 그때가 새삼 기억이 납니다.

한 산모는 일을 마친 후 손을 꼭 잡아 주시면서 수고하셨다며 감사하다는 말을 연거푸 하시면서, 다음번에 꼭 한번 보자는 말을 건네는 산모들을 볼 때면 내 가족마냥 기뻤고 크나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한국지역자환센터협회의 전국적인 산후관리 프로그램인 '아가마지'를 진행하면서 이에 만족한 산모들로 인해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났는지 서비스에 대한 문의가 점점 늘면서 수입도 점차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사업초기 처음 기대했던 만큼의 수입이 생겨나지는 않았습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다행히 공동체로 발전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보건복지부에서 시행하는 산모도우미 지원사업이 생겨났습니다. 출산장려정책의 하나로 무료산모도우미를 나라에서 파견해주는 바우처사업이라고 했습니다. 팀장에게 설명을 들었지만 바우처사업이란 게 생소하기도 하고 과연 얼마나 효과성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습니다. 하지만 점차 내가 가지고 있던 의구심은 희망으로 바뀌어 조합원들에게 그전보다 훨씬 안정적인 수입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요즘은 나라에서 받는 생계급여와 보충급여는 줄어들었지만. 내 스스로 누구의 도움도 없이 살아 갈 수 있다는 자신감과 함께 곧 수급자에서도 탈피 할 수 있을 것 만 같습니다.

아가마지 10년간의 시간을 뒤돌아보면 지역자활센터에서 같이 웃어주고 울어주시는 우리 팀장님과 여러 실무자들을 생각하면 내가 앞으로 자활에서 배운 이념과 정신을 잊지 않고 부지런히 노력하여 자활기업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진정한 자활자립이 뭔가를 보여주고 싶습니다.

삶은 때로는 헤어 나 올 수 없을 것 같은 깊은 절망을, 때로는 얽힌 실타래처럼 도저히 풀릴 것 같지 않은 문제를 던져 주기도 합니다.

이런 실타래처럼 묶여져 있던 내 삶에 자활공동체 아가마지 산모도우미는 그 실타래를 풀 수 있는 고리가 되어 주었습니다.

요즘은 비온 뒤에 땅이 더 단단히 굳어지듯이 힘들고 슬픈 날이 지나 더 단단해진 내 자신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자신이 하기에 달렸다는 말이 있습니다.

처음에 공동체로 나아갈 때 참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두려움이 없기 때문에 용기가 있는 것이 아니라 두렵지만 과감히 맞서는 것이 바로 용기입니다.

저만 바라보며 밝고, 착하게 그리고 건강하게 자라가는 세 명의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 제일 크고 소중한 제 전부인 아이들을 바라보며 앞으로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 것입니다. 열심히 산다면 아이들에게 자랑스러운 엄마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아직은 부족한 우리 아가마지지만 더 노력하고 열심히 하여 지금보다 더 크고 발전적인 자활기업을 만들 것입니다.

끝으로 자활사업에 참여해서 아이들과 살아 갈 수 있는 희망과 자신감을 찾게 해준 아가마지, 영천지역자활센터, 보건복지부 관계자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그날까지 이 일을 할 수 있는 길을 허락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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