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년의 밤' 이후 2년만에 새 장편 '28' 펴낸 정유정
단 6페이지의 서문만으로도 빨려 들어간다. 전작 '7년의 밤'(2011)에서 살인자의 아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가는 이번엔 도시 하나를 통째로 삼켜버리는 전염병을 소재로 독자들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새 장편 '28'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후끈하다. 출간된 지 열흘 만인 25일 예스24에서 종합 판매순위 2위로 올라섰다. 30만권이 팔려나간 '7년의 밤' 때보다 빠르다.
작가는 화양이란 도시를 계획해 치명적인 '빨간 눈' 전염병을 대입시켰다. 사람과 개들은 온몸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나라에선 결국 도시를 봉쇄한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극에 달한다. 반려동물과 생활하고 있다면 견디기 힘들 참혹한 묘사를 저자는 눈 깜짝 않고 쏟아낸다.
곱게 단장하고 나타난 정유정(47) 작가에게 독한 이야기를 모질게 끌고 가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일상에선 인간 본성이 안 나오잖아요. 나쁘거나, 더 나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야 진짜 캐릭터가 드러나죠. 인물을 압력 밑에 두는 것, 그게 바로 이야기가 앞으로 나가는 동력이에요."
작가가 간호사로 일하던 1987년, 거리 시위가 한창이던 시절 그는 병문안차 들렀던 전주의 전북대병원 앞에서 '극한 상황'에 닥친 적이 있다. 갑자기 최루탄이 터지기 시작하자 누구는 순식간에 도망갔고, 누구는 옆사람을 품었다. 사람이 이런 존재이구나 싶었다.
사람과 개에게 모두 전염되는 인수공통전염병을 소재로 삼은 건 저자가 책에서도 밝혔듯 수년전 구제역 때의 충격 때문이다. 산 채로 땅에 묻히는 돼지들을 보고, 밤새도록 땅밑에서 울음소리가 났다는 말을 듣고, "우리는 천벌을 받을 것"이라며 펑펑 울었다.
"우리의 목숨은 타자보다, 동물보다 더 소중한지, 사회에 질문을 던지는 역할을 했으면 해요. 독자들이 '7년의 밤'보다 비참한 이야기인데 따뜻하다고 하네요."
접속사를 뺀 작가 특유의 단문 때문에 화양에서 벌어진 28일간의 이야기는 몰아치듯 전력질주한다. 5명의 인물과 1마리 개의 시선이 맞물리는 3인칭 다중 시점이란 구성도 신선하다.
"감정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몰입돼야만 진정성이 느껴지잖아요. 짧고 하드보일드한 문장을 좋아하는데다 6개의 시선을 하나로 꼬았으니 입체적이 됐죠. 나는 장터의 만담꾼처럼 독자들의 혼을 홀랑 뺏고 싶어요. 독자들을 내가 만든 이야기 광장에 가둬놓고 싶고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