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대교, 흘러간 옛 이야기일까
서울 성수대교 북단을 눈여겨 보면 한쪽에 '희생자 위령비'(사진)가 세워져 있는 걸 알 수 있다. 지난 1997년 10월 21일 성수대교 붕괴 사고 3주기를 맞아 세운 것이다.
성동구 성수동과 강남구 압구정동을 잇는 길이 1160.8m, 폭 19.4m의 성수대교가 붕괴한 것은 등교와 출근이 맞물리는 오전 7시40분쯤. 길이 48m짜리 다리 상판 한 개가 통째로 떨어져 나가면서 마침 그 위를 달리던 시내버스와 승합차, 승용차 등 모두 6대의 차량이 20m 아래 한강으로 추락한 것이다. 사망자가 32명, 부상자도 17명에 달했던 전례 없는 사고였다. 특히 시내버스에 타고 있던 무학여중고 학생 9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어 안타까움을 더했다.
비슷한 시기 일어난 대형사고는 그 뿐만이 아니었다. 성수대교 붕괴 사고가 일어난 바로 그 날, 충북 충주호에서는 유람선 화재로 29명이 숨지고 33명이 중경상을 당했으며, 이듬해 4월에는 대구지하철 공사장 가스폭발 사고로 1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또 6월에 일어난 서울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는 500여 명의 사망자와 1000명에 가까운 부상자를 내며 정점을 찍었다. 소방 설비조차 제대로 갖추지 않은 안전 불감증, 타당성 조사도 없이 진행된 설계, 그리고 도덕적 해이의 결과였다.
성수대교 붕괴 사고의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방면에서 부실 시공을 한 정황이 역력했고 안전검사를 위한 접근 통로조차 없었음에도 사전에 아무런 시정 조치가 내려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 결과는 적이 충격적이었다. 볼트와 너트 가운데 손으로도 풀리는 것이 부지기수였고 최소 10㎜ 이상이어야 하는 용접 두께는 고작 8㎜에 불과했다. 상판 연결 부위는 심하게 녹슬어 있었으며 그걸 감추려고 페인트가 덧칠해진 곳도 태반이었다. 성수대교는 언제 무너져도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셈이다. 당국의 무사안일과 직무유기도 도마에 올랐다. 완공 이후 무너질 때까지 15년 동안 정밀 안전진단을 단 한 차례도 실시하지 않았다.
문제는, 성수대교 붕괴 사고가 과연 흘러간 옛 이야기일 뿐이냐는 것이다. 불과 2~3년 전 낙동강의 왜관철교와 남지철교, 남한강의 신진교 등 4대강 사업 구간에 있는 다리들이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다. 장마철인 요즈음, 불안감이 가시지 않는 이유이다.
/'다시, 서울을 걷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