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이의 엄마로 브랜드컨설팅 전문회사 '브랜드앤컴퍼니'에 재직했던 김도정(40세)씨. 김씨는 회사의 전략·기획실 팀장(부장)으로 SK커뮤니케이션즈의 '네이트', LG화재의 '그레이터스 배구단' 등 유명 제품의 네이밍을 담당, '히트 브랜드 제조기'로 이름을 날렸다. 친정어머니의 든든한 지원 덕분에 결혼한 뒤에도 5년 간 천하무적 여전사로 회사를 누볐고, 임원 승진도 코앞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을 돌봐주시던 어머니의 건강 악화로 2008년 8월 회사를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을 배출하며 '여풍당당' 시대에 진입한 대한민국. 하지만 대다수 한국 기업에서 '유리 천장'은 여전히 높기만 하다. 여성들이 '승진 사다리'를 타고 '기업의 별'로 불리는 임원 자리에 오르기는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다.
7일 미국의 기업지배구조 분석기관 GMI레이팅스에 따르면 3월 말 현재 한국 기업의 여성임원 비율은 1.9%로 조사 대상 45개국 가운데 두 번째로 낮았다. 일본은 기업의 여성 임원이 전체의 1.1%에 불과해 꼴찌를 차지했다.
한국에서 여성 임원이 배출되기 가장 어려운 이유로는 출산과 육아 문제로 인한 경력 단절이 꼽힌다. 여성 임원을 상대적으로 많이 배출하는 유럽 국가들은 여성들이 결혼한 뒤 50~60대까지 지속적으로 경력을 이어간다. 회사의 탁아 시설과 복지 정책,정부 차원의 지원책 덕분이다.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와 기업 문화도 한몫한다. 적극적으로 사회 활동을 하며 목소리를 내는 여성을 '드센' 여성으로 보는 시각이 존재하는 것은 물론, 여성 근로자를 차별하며 업무 능력을 깎아 내리기도 한다. 남성이 대다수인 상당수 제조 업체는 '전우애'로 똘똘뭉친 남성 중심의 군대식 기업 문화가 팽배하다.
지난 3일 삼성전자의 2013년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삼성전자의 전체 임원 1329명 중 여성의 비율은 2.4%다. 또 전체 임직원(23만5868명) 가운데 여성 인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39%지만 여성이 임원이 될 확률은 0.01%에 불과하다. 여성 1만 명에 1명꼴로 임원이 되는 것이다. 반면 남성의 경우 지난해 기준 약 16만명 가운데 1297명이 임원으로 선출됐다. 남성 1만명 가운데 81명이 임원 자리에 올랐다는 계산이 나온다.
최근 출간한 자서전 '린인'을 들고 한국을 찾은 페이스북의 최고운영책임자(COO) 셰릴 샌드버그(44)는 "성별이 아닌 꿈에 따라 아이들이 장래를 결정할 수 있도록 가정·기업·국가 등에서 다각도의 노력이 필요하다"며 "특히 한국은 근무시간이 긴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일과 가정 생활을 양립할 수 있도록 조정해야 더 많은 여성 리더가 탄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