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人 머니 산업 IT·과학 정치&정책 생활경제 사회 에듀&JOB 기획연재 오피니언 라이프 CEO와칭 플러스
글로벌 메트로신문
로그인
회원가입

    머니

  • 증권
  • 은행
  • 보험
  • 카드
  • 부동산
  • 경제일반

    산업

  • 재계
  • 자동차
  • 전기전자
  • 물류항공
  • 산업일반

    IT·과학

  • 인터넷
  • 게임
  • 방송통신
  • IT·과학일반

    사회

  • 지방행정
  • 국제
  • 사회일반

    플러스

  • 한줄뉴스
  • 포토
  • 영상
  • 운세/사주
경제>경제일반

[권기봉의 도시산책] 서울과기대에 남아있는 전쟁의 기억



서울과기대에 남아있는 전쟁의 기억

현재 서울과학기술대학교라 불리는 옛 서울산업대학교 교정을 걷다 보면 지은 지 수십 년은 지난 듯한 건물들을 여럿 만날 수 있다. 모두 일제강점기 때 지은 것들이다.

앞서 일제는 1920년대 초중반 지금의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일대에 경성제국대학을 설립했다. 법문학부와 의학부 등 2개 학부가 설치됐으며, 청량리에 예비학교 격인 예과를 두었다. 들불처럼 번지던 조선인들의 민립 대학 설립 움직임을 깨뜨리는 동시에 효과적인 통치를 위한 전문 인력을 길러내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일제는 다른 학문에 대한 수요에도 눈을 뜨게 된다. 1941년 들어 기존의 학부 외에 '이공학부'도 만들게 되는데, 지금으로 치면 자연과학대학이나 공과대학 격이다. 다만 이공학부 설치가 조선인들의 실력 배양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전적으로 전쟁 수행을 위한 포석이었다. 초대 이공학부장으로 당시 해군 화약창장이던 야마가 신지 해군 준장을 앉힌 데에서 이공학부를 설치한 목적을 짐작할 수 있다.

건물을 세운 곳이 도심에서 10㎞나 떨어진 한적한 교외였다는 점, 특히 학교 안으로 경춘선 철도가 지나간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지금이야 서울~춘천 구간만 운행되지만, 당시에는 경춘선을 타면 북한 흥남으로 곧장 연결되었다. 흥남이 어떤 곳인가. 당시의 흥남은 식민지 조선의 최대 공업지대 수준을 뛰어 넘어 '군수산업의 메카'로 불렸던 곳이다. 한마디로 경성제국대학 이공학부는 흥남에서 만들어지던 다양한 군수물자의 비밀스러운 기초 연구기구로서 설립된 것이었다.

물론 대학이 전쟁에 동원된 것은 이공학부를 설치하기 전에도 있었다. 1930년대 말에 벌어진 중일전쟁 때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학생들이 일본군 병사들을 위한 '구충제' 개발에 동원된 것이다. 전쟁에 나간 군인들이 기생충 문제로 골머리를 앓자 스기하라 교수가 구충제로 쓸 민간약이 없느냐고 조선인 학생들을 다그쳐, 연구실 강사로 있던 조선인 학생 오진섭을 통해 '해호미'라는 구충제를 개발해 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학문이란 것이 정치 군사적인 요구, 특히 일본 제국주의의 전쟁 확대에 부응하는 수단으로 이용되던 시절이 있었다. 바로 그 흔적이 한때 경성제국대학 이공학부가 들어서 있던 지금의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정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다시, 서울을 걷다' 저자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Copyright ⓒ 메트로신문 & metr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