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축한 장마로 숙면을 못 취하는 나날들이다. 잠을 설치는 날에는 어김없이 여러가지 꿈을 꾼다. 현실처럼 생생하고 주제도 다양해서 일상이 피곤하고 신경쓰이는 게 많아 꾸는 산만한 '개꿈'정도로 치부했다. 한 모임에서 너스레를 떨자 꿈 분석에 일가견이 있는 한 정신과 의사가 단호하게 말했다. "개꿈이란 건 존재하지 않아요."
무의식이 의식을 뚫고 나오려고 애쓰는 과정이 꿈이라는 것이다. 그 무의식은 현실에서 내가 구현하지 못한 것을 보상하려고 한다. 가령 나는 특정 남자들과 불경스러운 '연애'를 하는 꿈을 자주 꾼다. 너무 생생해서 눈이 떠지자마자 민망하고 당혹스럽다. 그러나 그 꿈들은 그 연애상대가 가진 어떤 속성을 내가 취하고 싶다는 의미였다. 왜 하필 그 사람인가 하면, 그 사람이 내가 가지고 싶어하거나 질투심을 느꼈던 어떤 특성에 대한 상징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아, 나에게 이런 욕망이 있구나, 라며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소싯적에는 미친 듯이 악한에게 쫓기는 꿈을 꾸곤 했다. 어렸을 때 흔히 '키 크는 꿈'이라고 하는 그것 말이다. 악몽을 꾸는 것은 나의 내면과 현실에 금기가 많음을 의미했다. 마음 약한 평범한 사람들은 악몽을 통해 미리 벌을 받음으로서 금기를 시도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씻어낸다. 성장기에 쫓기는 꿈을 많이 꾸는 것이 나를 둘러싼 여러 틀을 깨려는 갈등과 몸부림에서 비롯된다. 꿈은 자주 현실의 한계에 대한 '보상'차원에서 내용이 그 반대로 투영되었다.
전문가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듣다보니 꿈은 자가치유를 도와주는 셀프 카운슬러나 다름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꿈을 직접 해석해보는 것을 권유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몸을 움직이지 않은 체 간밤의 꿈 내용을 머리맡 노트에 신속히 메모를 해놓고 그 의미를 찬찬히 반추해보라는 말이다. 꿈 분석으로 내 속마음을 알고 내 감정을 더 단순하게 바라보게 된다. 최소한 '개꿈'이 없다는 말이 구원이었다. 숙면을 못 취한 대신 내 마음상태파악이라도 가능하니까!
글/임경선(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