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을 걷다 보면 여러 빌딩들 사이로 고풍스러운 건물이 하나 눈에 들어 온다. 고종의 황제 선포식이 열렸던 환구단의 부속 건물 '황궁우'다.
단군 이래 우리 선조들은 천제, 즉 하늘에 제를 올려왔는데 그건 조선시대 들어서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하늘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것은 황제뿐이라는 중국의 간섭과 압력 때문에 이 행사는 조선 초기 들어 중단되고 말았다.
그런데 400여 년 뒤인 1897년, 천제가 부활한다. 조선 제26대 임금 고종에 의해서였다. 1876년 개항과 함께 열강의 각축장으로 전락한 조선은 이후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동학농민운동에 청일전쟁까지 대내외적인 요인들이 맞물리며 한시도 조용할 틈이 없었다. 특히 명성황후 시해 사건은 온 나라를 온통 충격과 혼란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그때, 급전직하하는 왕실의 권위를 바로 세우고 국제 사회에서의 발언력을 높이기 위해 고종이 택한 것은 스스로 황제가 되는 것이었다. 더불어 조선이 황제의 나라임을 선포해 자주독립국가로서의 면모도 갖추기로 했다. 그 황제 즉위식을 위해 만든 제단이 바로 환구단이다.
그러나 이름만 건실할 뿐 정작 내실이 없던 대한제국은 얼마 안 가 몰락했고, 환구단의 운명 역시 처연할 수밖에 없었다. 일제가 조선을 강점한 지 4년 만인 1914년, 황궁우를 제외한 모든 건물들을 헐어버리고 그 자리에 조선철도호텔을 세운 것이다. 대한제국의 자존심과도 같던 공간이 일제의 근대성을 상징하는 시설물로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렇다면 해방 뒤 사정은 바뀌었을까. 고종이 일제에 의해 황위에서 끌어내려진 지 106년이 되는 날에서 딱 하루가 모자라는 오늘, 환구단 터를 걸어보자. 남아 있는 것이라곤 조선철도호텔 이후 들어선 웨스틴조선호텔의 정원 장식물로 전락해버린 듯한 황궁우와 보호각 없이 풍찬노숙을 하고 있는 석고(돌북), 그리고 서울 우이동의 한 시내버스 차고지 대문으로 쓰이다 2009년에야 정체가 밝혀지면서 돌아온 환구단 정문뿐이다. 물론 그 정문이란 것도 원래 자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엉뚱한 위치에 놓여지고 말았지만./'다시, 서울을 걷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