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 회장이 22일 계열사 자금 인출의 통로가 된 베넥스 펀드에 대해 법정에서 또다시 진술을 바꿨다.
항소심 막판에 변호인을 교체한 최 회장은 이날 서울고법 형사4부(문용선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16번째 공판에서 베넥스 펀드가 김원홍씨의 종용과 함께 자신의 주도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밝혔다.
최 회장은 이 자리에서 김 씨에게 홀려 사기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SK C&C 주식을 제외한 전 재산을 김씨에게 맡기고 돌려받지 못했으므로 김씨를 사기 혐의로 고소하고 투자금 반환 소송도 내겠다고 말했다.
이날 법정 진술에 따르면 최 회장은 1998년 손길승 전 부회장을 통해 김원홍씨를 소개받은 뒤 한 달에 한 두 번씩 그를 만났다.
최 회장은 주가, 환율, 미 연방준비제도 이자율 등에 정통한 김씨에게 신뢰를 느끼고 2005년부터 선물·옵션 투자금 명목으로 총 6000억원에 달하는 돈을 맡겼다.
하지만 김씨는 2008년 6~8월 추가로 1000억원을 받은 뒤 곧 원금과 이익을 돌려주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지 않고 이후 거짓말을 계속하며 시간을 끌었다.
최 회장은 자신의 기소 후 김씨가 귀국해 해명하고 투자금도 반환하겠다고 말했으나 이 역시 거짓이었다고 밝히며 지난해 6월 2일 대만에서 김씨를 만난 뒤로는 그를 믿지 않기로 결심하고 관계를 끊었다고 설명했다.
최 회장은 계열사 자금 인출 관련한 이번 사건 역시 김씨가 자신 몰래 감행한 범행이라고 주장한다.
다만 최 회장은 김씨 요구로 펀드 조성에 관여한 점은 새로 인정했으나 계열사 돈이 김씨에게 송금된 점을 몰랐다는 기존 입장은 유지했다.
변호인은 이와 관련해 최 회장은 결국 횡령 혐의를 부인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재판부가 앞서 피고인이 잘못한 점을 인정하고 반성하면 양형에 참작하겠다고 밝히자 변론 전략을 수정한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제기됐다.
재판부 측은 여전히 최 회장이 펀드 출자의 과정, 경위, 동기 등과 김원홍씨와의 관계에 대해 거짓말을 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