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내 영어 실력의 한계를 여실히 깨닫는 계기가 있었다. 서울 용산아트홀에서 열린 데보라 카터의 재즈콘서트에서 였는데, 그녀가 중간중간 영어로 하는 말이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동안 영어를 배운 내 귀에 제대로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의 발음이 특이했던 걸까? 아니면 내 영어 듣기 실력이 형편 없는 탓일까? 사실 야속한 것은 데보라 카터가 한국어를 모르는 것을 고려해, 그리고 나 같은 한국인 관객을 고려해 왜 동시통역을 통한 자막 서비스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었다.
예산이 부족이 문제였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주최 측에서는 그 정도 영어는 관객들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데보라 카터의 농담에 적절하게(?) 반응하던 관객들의 모습을 보면.
요즘 한국 사회에서는 외국어, 특히 영어를 모르면 생활하기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그 흔한 카페나 빵집, 식당조차 대부분 영어 간판을 단 게 태반인 탓이다.
문제는 외국어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던 연로자들의 경우 간판 '색깔'이나 '모양'에 의지하지 않고는 그 흔한 관공서나 은행 이름마저 제대로 읽기 어렵다는 현실이다. 심지어 농어촌지역에 많은 농협마저도 이름을 'NH'로 바꿨고, 담배인삼공사는 'KT&G'로, 주택공사는 'LH'로 바꾼 지 오래다.
정부 기관들도 뒤지지 않는다. 코드 오브 컨덕트, 배리어 프리, 케이 무브, 스마트 그리드…. 정확한 뜻을 알기 힘든 이 말들은 지난 100일 동안 한국 정부기관에서 낸 보도자료에 등장하는 용어들이다. 지난해 3월부터 5월까지의 정부 보도자료 2869건을 전수 조사한 한글문화연대에 따르면 모두 1만2895회에 달하는 외국어 오남용 사례를 발견했다고 한다. 1건당 평균 4.49회에 달하는 수치다.
현행 국어기본법 제14조는 규정하고 있다. '공공기관 등의 공문서는 어문 규범에 맞추어 한글로 작성해야 한다. 다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에는 괄호 안에 한자 또는 다른 외국 글자를 쓸 수 있다'고. 그러나 현실에서는 정부기관조차 엄연히 불법 행위를 하고 있는 셈이다.
적절한 언어와 문자 사용은 멋이나 분위기를 떠나 '인권'의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한국어와 한글로 소통할 수 없다면 그건 정상적인 사회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서울을 걷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