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합리적' 이미지가 강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도 자국 산업 보호 앞에서는 진보적이지 못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4일 애플의 구형 스마트폰 제품 수입을 금지한 국제무역위원회(ITC)의 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1987년 이후 25년간 행정부가 ITC의 권고를 거부한 사례가 한차례도 없었다는 점에서 이번 결정은 관련 산업계에 큰 파장을 미칠 전망이다.
마이클 프로먼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이날 어빙 윌리엄슨 ITC 위원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무역정책실무협의회(TPSC), 무역정책검토그룹(TPRG), 관련 당국 및 당사자들과의 심도 있는 협의를 거친 결과 ITC의 수입금지 결정을 승인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프로먼 대표는 그러면서 "이번 결정은 미국 경제의 경쟁 여건에 미칠 영향과 미국 소비자들에게 미칠 영향 등 다양한 정책적 고려에 대한 검토 내용을 기반으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따라 애플은 '아이폰4' '아이패드2' 등 중국에서 생산한 구형 스마트폰과 태블릿PC 제품을 계속 미국으로 수입할 수 있게 됐다.
앞서 ITC는 지난 6월 애플의 구형 제품들이 삼성전자의 특허를 일부 침해한 것으로 규정해 이들 제품을 미국 내 수입 금지해야 한다고 판정하고, 백악관에 이 같은 내용을 권고했다.
애플이 이처럼 기사회생한 배경으로 '일자리 창출 약속'이 꼽힌다. 주요 제품을 거의 해외에서 생산하고 있다는 비난의 강도가 높아지자 미국 내 생산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팀 쿡 애플 CEO는 "미국에서 제품이 생산되기를 바라고 있으며 애플이 이를 위해 최대의 노력을 하고 있다"는 답변을 틈날 때마다 하고 있다.
실제 애플은 지난 6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세계개발자대회(WWDC)에서 전문가용 데스크톱 컴퓨터인 '맥 프로' 신형을 미국 내에서 생산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아이폰·아이패드에 새긴 '디자인드 바이 애플 인 캘리포니아(Designed by Apple in California, 캘리포니아의 애플이 디자인했다)'라는 문구를 강조하며 미국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더 강하게 내세웠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측은 "애플이 우리 특허를 침해했다고 인정한 ITC의 최종 판정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은 유감"이라는 공식 입장을 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