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의 계층 갈등이 스크린에서 폭발하고 있다.
8월 한국영화 관객이 2000만 명을 넘긴 가운데, '설국열차'(884만)를 시작으로 '더 테러 라이브'(542만), '숨바꼭질'(420만), '감기'(274만) 등 사회적 약자들의 저항을 그리고 무기력한 공권력을 비판하는 네 편의 한국영화가 연이어 히트하는 이례적인 현상이 벌어졌다.
이 중 '숨바꼭질'은 집 없는 서민들에게 공포나 다름없는 주거 문제를 스릴러로 풀어내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생존의 사각지대에 내몰린 두 모녀가 중산층 가정의 아파트를 빼앗으려 한다는 줄거리로 현실감과 설득력을 더한다.
열차안 피지배 계층의 반란을 다룬 '설국열차'와 대통령 등 권력층에 맞서는 테러범의 행위에 당위성을 부여하는 '더 테러…', 치명적인 감기 바이러스에 감염된 시민들의 무차별 학살을 계획하는 정치인과 관료를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감기' 역시 대중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있다.
외화도 이같은 유행에서 예외는 아니다. 한국영화의 강세 속에 유일하게 선전하고 있는 '나우 유 씨 미: 마술사기단'은 악덕 금융 자본가들이 지배한 사회에서 마술로써 정의를 실현하는 '21세기형 로빈 후드'들을 주인공으로 앞세운다.
▶ 억눌린 상태 영화로 해소
이처럼 유사한 흥행 코드를 지닌 영화들에 관객들이 일제히 열광하는 이유는 최근의 사회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정치·경제·사회적 양극화로 인한 소외감과 지속되는 경기 불황으로 인한 불안 심리가 날로 커져가고 있는 탓으로 해석된다.
대중의 정서를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는 관료들의 무책임한 태도도 흥행을 부추기고 있다. 일례로 얼마전 청와대 관계자는 정부의 세제 개편안과 관련해 "거위에게서 고통 없이 털을 뽑는 방식"이라며 사실상의 증세를 합리화해 거센 비난을 사기도 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이동연 교수는 "정치에 직접 참여해 분노하지 않더라도 짜증나는 현실에 대해서는 누구나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국민이 억압을 인지하면서도 이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체념하는 게 현실"이라며 "영화를 통해 억압된 심리를 해소하고자 하는 욕망이 극장 나들이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과거 다큐멘터리나 고발 형식의 정치 영화에서만 다뤄지던 소재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도 이같은 트렌드를 거들고 있다.
이 교수는 "특정 이념을 가진 감독의 저예산 영화에 머물던 폴리티컬 시네마가 소셜 시네마로 확장됐다"며 "사회적 의제의 상업화가 가능해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설명했다.